서두를 다소 과격하게 저술해 보자면, 사람은 무리 동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갈기었을 때 자신을 마치 이리 같은 갯과 동물에 비유한 것이 '불쾌하다' 느끼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이는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인 탓이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을 순화하지 않은 결과물이 바로 저 문장이므로. 인간의 역사에서 인류는 단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다. 한국사 시간 빳빳한 교과서의 첫 장을 펼쳐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탄생 이래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신의 의도가 개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자연스레 무리를 이루어 산천초목을 전전했으며 이후 동굴을 버리고 움막과 함께 강가에 정착한 뒤 돌 대신 금속 무기를 손에 쥐었다. 부족의 탄생은 곧 고대사회의 기틀이다.
짐승의 뼈에 문자를 기록하던 시절부터 전자망을 통해 허구의 세계에 글을 남기는 목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스스로 선택해 사회를 구성하였고, 그 체제 밖으로 벗어나면 불안에 떨었다. 구성원에 속하지 못한 소수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선연한 탓에 개인은 기를 쓰고 평범한 다수에 몸을 숨기려 한다. 물론 본인의 의지로 속세에서 한 발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존재하나, 그 틈에 끼고 싶어도 예기치 못하게 혹은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선 너머로 튕겨 나오는 사람도 있다. 내성적, 지나치게 의존적, 극도의 회피 성향, 히키코모리... 다양한 이름으로 지칭되는 것은 유수처럼 흘러 '사회성 부족' 한 단어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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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과거에 비해 더욱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고, 갖은 외부요인으로 각박하고 첨예해진 분위기 속 개인이 우선시되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퍼스널 스페이스-라고 좋게 포장하지만 '나에게 피해 주지 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융합한 정서-가 중요해진 사회에서 사회성 부족한 사람은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제대로 섞여들지 못해 모난 돌처럼 툭 튀어나온 모서리가 옆에 있는 것들과 부딪히며 잡음을 만드는 탓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루에도 몇십, 몇백 개씩 SNS에 뜨거운 감자가 되어 들불처럼 번진다.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려가며 분노와 황당무계함, 슬픔으로 얼룩진 짤막한 글들을 하릴없이 읽으면 같은 공교육을 받은 것이 맞나 의심이 들고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엉망진창인 사람이 있기도 한데, 이건 쌍방 잘못 아닌가?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가 쓴 글을 읽으며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사회성 부족이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나 문득 자조적인 생각이 들고 만다.
무엇이 사회성 부족이고, 무엇이 아닌지. 어디까지가 잘못이고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범위일지. 주관적인 평가와 시선이 무성한 풍랑을 만나 갈피를 잡기가 고되어, 사회성 부족한 사람으로서 뱃길을 읽고자 일기를 써보고자 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가 보통과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은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투른 사고와 행동을 가진 채 세상을 대하지 않았는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봄과 동시에 지난날 본인의 잘못을 회고하는 의미에서 나 자신의 치부를 익명 속에 적나라하게 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