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번째 퇴사위기는 입사 4개월 차, 수습 기간이 끝나고 연속 3일 밤근무를 할 때였다. 밤에는 오늘의 전산을 정리하고 내일의 전산을 검토하고 준비하는 일을 했다. 꽤 집요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메인부스에 앉아있는 상사가 서브 부스를 감독하는데, 8시간 동안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보면 된다. 밤 근무는 보통 3개를 이어서 하니 갈 길이 아주 멀다. 아침에 인수인계를 넘기는 사람은 보통 연차가 높은 사람이라서, 업무가 끝난 아침에도 잔뜩 혼이 났다.
수습 기간에는 사수와 같은 파트를 둘이 맡지만, 그 후에는 각자 16 유형의 기록을 검토한다. 혼자서 알아서 잘했을.. 리가! 여러 사람이 도와줬지만 3일 내내 밤이랑 아침 동안 탈탈 털리고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짐도 다 챙겼겠다. 유니폼은 놓고, 사물함도 다 비웠다. 일부러 부서장님이 출근할 때까지 시간도 끌었다. 완벽해! 부서장님을 만나서 “이제 못하겠다”라고 말하고 퇴사 절차를 오늘 딱 밟으려는 순간, 부서장님이 먼저 와서 “줄 게 있으니 잠깐 봐요.”라고 나를 불렀다. 그만두려는 순간에도 겁은 났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부서장실에 들어가니 종이와 과자를 주셨다. 저 종이 3개월 전에 본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특이하게 입사한 다음 달에 되면 워크숍을 간다. 그 한 달 동안 그만두는 인원이 많아서 그런가. 여하튼 워크숍을 가서 1박 2일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강의도 듣는 시간을 가진다. 마지막에 동기라고는 해도 아직 낯선 이들과 정말 쓸 말 없는 롤링 페이퍼를 쓴다. 친하지 않아서 피상적인 응원이 대부분이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지금까지 잘한 만큼 더 잘할 거다.” 정도? 이 편지는 수거해서 3개월 후에 부서장을 통해 돌려준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종이를 받는 순간에 그만둔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내일 쉬는 날이니까 내일 와서 퇴사 절차를 밟으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난히 짐이 많은 나를 보고 고연차 직원이 물어봤다. 짐이 한가득이네. 그만두는 거 아니지? 나는 빨래할 짐을 챙겼다고 대충 둘러댔다.
집에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과자를 먹는데 퍽퍽하지만 맛있었다. 과자 깨무는 바삭한 진동에도 머리가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웠다. 기다리던 버스에 타고 뒤에까지 갈 체력이 없어서 기사님 뒷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커다란 편지를 펼쳤다. 달리는 버스에서 특별히 나를 위해 쓰지도 않은 말들을 읽으며 집에 오는 30분 동안 쉬지 않고 울었다. 눈물이 수도꼭지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누가 시련을 겪으면 단단해진다고 했을까. 이렇게 별거 아닌 말에 눈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면 그때 최선을 다해 말랑해졌던 게 분명하다. 피곤하고 슬픈 거랑 더불어서 편지는 감동적이고, 이 편지에 감동받는 내가 너무 자존심 상했다.
여하튼 그 별거 아닌 편지에서 응원을 느낀 나는 쉽게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마저 다니기로 했다. 너무 울어서 그 당시 자세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름 4개월 동안의 서운함이 올라왔었나 보다. 물론 지금은 직장에 나름 재미와 마음을 붙여 잘 다니고 있다.
이번 글의 제목에 답해보자면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다. ‘퇴사’ 글자만 보아도 두근거리는 사람 여기 많을 것이다. 그 두근거림은 다 나 같은 에피소드가 다들 있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