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실수의 계절 앞에서
완연한 여름이 왔다. 오피스 문 밖을 가득 채운 채광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벌써 완연한 여름이군, 을 외치는 요즘이다. 뜨거운 계절의 한편에서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밤들과 말들을 기워내고 있다. 제로에 가까운 현재감과 녹은 생크림과도 같은 감각. 꿈속에 있는 것만 같다. 글쎄, 꿈이라면 좀 나을까. 이 말로 시작하자.
나는 먼 도망길에 있다. 내 일 인분의 삶조차 감당하기 힘들어 주변인을 소홀히 하는 죄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열정 가득했던 포카리스웨트 보이는 무기한 순연. 밀물과 썰물에 맞춰 해변가를 거니는 국적 미상의 여행객이 되었다. 마음이 일렁이면 잠시 도망갔다가도 이내 잠잠해지면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는, 그런...
작년 7월 비를 피해 들어간 어느 후미진 상가를 떠올리자면, 그때 나의 마음과 견주자면 지금의 마음이란 말할 수 없이 가볍다. 하나의 마음을 정리하기를 여럿 하고 나니 마침내 나는 바람 없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가볍다. 그리고 외롭다.
가까워져야 할 이상들은 실로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론 멀리에만 있다. 바람처럼 오는 것들이 나를 숱히 흔든 다음에야 새로운 싹이 나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잦아들자 나의 다이빙은 더 깊은 곳으로 가길 멈추었다. 괴롭고 귀찮은 것들이 나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였다니, 나는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바람에서 여름의 향이 난다. 해가 질 즈음이면 찌는 듯한 더위가 한풀 꺾인 향이 나고, 어스름이 오면 아카시아 향이 슬며시 올라온다. 내 손 안에만 있던 초록, 하늘에 곧 닿을 것만 같은 조립식 지붕들을 떠올린다. 내가 처음 쿠바나 더블을 맛본 순간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오늘 나는 그립다. 외롭다. 조금도 아니고 사무친다.
이번 여름은 많은 실수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할 테다. 이름만 아는 누군가의 세상에 감히 침투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릴 수도 있다. 내 입 안의 썸머는 녹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다 놓친다 해도, 그래도 가까이 왔으면 한다. 또 흔들리고 새 잎을 틔워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