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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May 04. 2022

조금 더 더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심하게 동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낙방한 소설 공모전이나 어제의 인연, 지금  상태나 혹은 내가 이뤄둔 것들. 아픈 상처를 덮어두는 일이라면 대상이 누구든 적극적으로 말리는 나이지만, 정작 나는 자주 그러곤 한다. 모르는 척의 달인이 되어버렸다. 나는 무식하게 가까운 시일의 내가  해결해주리라 믿는다. 빨래와 청소, 그리고 그럭저럭 괜찮아지는 일도.


 요즘은 사춘기가 다시 찾아온 것 마냥 변덕스럽다. 삶도 사랑도 일순간 좋았다가, 또 죽을 듯이 미웠다가 한다. 흥미가 싹 없어지다가도 몇 년 간 열어보지 않은 편지함처럼 이내 궁금해진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도 적적한데 한 주 전의 나는 일기 속에서 잘만 살아 숨 쉬고 있다. 분명히 일교차의 탓이다. 아침은 겨울이었다가 저녁은 여름이라면 나는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 내 외투는 너무 무거워서 입고 벗기가 힘이 든다.


 무심한 것들이 제일 날카롭다는 생각을 한다. 춘삼월의 일광 지나 오뉴월의 타오르는 햇빛이 만든 그늘과, 이번 여름이 악의 없이 찾아올 것들을 떠올리자면 더욱 그렇다. 그것들이 합쳐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잔인함을 느낀다. 계절은 그저 흐르고 석양은 그저 체리에이드 빛으로 물드는데, 그것이 그토록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백 매화보다도 하늘이 가끔 더 붉은 날이 오면 나는 멈추고만 싶다. 내가 어디에 서있든.


 나는 내가 동경했던 몇 명을 알고 있다. 그들의 이름을 잊고 살지만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금방 떠올릴 수 있다. 그들도 무심한 행동들을 했다. 무심한 삶을 살았다. 그 무심함이 나에겐 똑같이 잔인했다. 내가 그런 이들을 동경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타인을 울리는 데에 너무나 많은 열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저 툭 뱉는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잔인함을 느끼게 하고 싶다. 붉은 하늘이 되고 싶다.


 바쁜 세상에서 쉽게 끓어오르는 사람이 되지 말자 다짐했건만 나는 왜 붉음을 꿈꾸고 있을까. 정오의 파란 하늘과는 역시 거리가 멀다. 오렌지빛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푹 익어 숨이 죽은 야채처럼, 나는 여름의 초입새에서 크게 좌절하고 있다. 삶이란 살아가며 탐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러나 탐구될 만한 삶을 살고 있다.


 내 글이 언젠가 누구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만을 기다린다. 붉은 날 석양이 귀 끝에 걸리는 날엔 제대로 멈추고만 싶다. 나는 그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겨울이 오면 빨간 코끝과 붉어진 손등을 내비추고는, 조금 더 더워졌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해야겠다. 이번 여름도 너무 추웠다고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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