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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Feb 22. 2022

아마추어 라이프

꿈꾸는 토마토

사람들의 걸음이 유독 빠르다. 나는 걸음이 참 느린 사람이다. 걸음만 느리다면 이러한 걱정도 하루아침의 것이려니 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러하지는 않다. 저마다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괜히 위축된다. 나는 이렇게나 제자리에 있는데. 나는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이렇게 서투른데. 제법 여러 삶을 살아본 듯한 사람들이 부럽다.


언젠가는 고작 한 모금 마신 물을 엎지르는 해프닝도 있었다. 울어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힘도 없었던 날이었다. 울어야 할 때가 오면 이때다 싶어 울어버리는 용기도 필요할 텐데. 나는 그런 부분에서는 겁쟁이다. 울 때가 아니더라도 울어버리는, 때가 아니더라도 그러이 하는 요령도 있어야 하겠다. 난 필요한 것이 많다. 처리할 거리가 많아 험난하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 이다지도 험난한 줄 알았다면,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로 태어나기를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번 생은 좀 느릿느릿 살고, 일곱여덟 번째 삶이 오면 그때야 제대로 좀 살면 될 테니까. 그렇다면 내 오늘이 왜 이다지도 무른지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될 테니까.


성공은 모르겠고, 사랑은 더더욱 모르겠다. 한 번 제대로 실패해보자기엔 삶이 늘어진 고무줄처럼 회복할 여력이 없을까 두렵다. 크게 데여보기엔 장작불 앞에서 땔감을 적시는 일 같기도 하다. 어쩌다 대단한 삶이 오지 않는 한, 이대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포말처럼 사라지는 인생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다.


 망설이다 보니 느리게 살고 있었다. 케첩이 되고 주스가 되겠다는 토마토가 멋있는 사회에서 나는 꿈 꾸는(꿈만 꾸는) 토마토로 살고 있다.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토마토 농장의 터줏대감 정도로 남으면 성공한 삶일까. 천천히 익어가는 일이 토마토에겐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장에 출하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보단 하우스 볕이나 진득이 느끼는 편이 낫겠다.


 내 세상은 오늘도 낯설다. 한 번 겪어보지 않은 내일이 여전히 두렵다. 사람들이 날 한심하게 보는 것만 같다. 넌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래? 그럼에도 먼저 앞질러 가는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안녕을 보낼 것이다. 나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아마추어 라이프는 좀 이따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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