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호 Dec 18. 2021

겨울담론 1

목련과 나와 나를 닮은 파도

하늘이 희뿌연 날이면, 곧 눈이라도 올 것 같은 날에는 피아노를 평소처럼 쳐도 소리가 더 세게 울렸다. 해머도 추위를 탔겠지.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리는 계절에 도착했다. 눈 오는 날이 더 고요한 이유는 아무리 과학적으로 증명되어도 감각이 더 선명하게 알고 있다. 눈이 오니까, 겨울이니까.


겨울에만 들리는 소리, 12월에만 연결되는 채널의 주파수. 그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겨울은 겨울만의 무언가가 있다. 12월의 주말의 끝은 말을 더듬게 되는 순간에 도착하게만 되고. 그러니까, 같은 말만 반복하게 되는 것.


12월이 되며 언젠가 초연해졌다. 밤잠을 내리 설치다가도 어느 날은 꾸벅꾸벅 낮잠을 잤고, 좋은 일이 없어도 제법 웃었다.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들을 다 스쳐 보냈지만 그런 상황을 아쉬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나 왔다 감은 밀려왔다 나가는 파도와도 같다. 포말마저 사라지면 그때서야 잊히겠으나, 그래도 괜찮다.


E와 F 사이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라거나, 미와 파 사이 감각으로는 있어도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었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없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분명히 있는데... 내 마음이 곯았던 이유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우리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은 채로 올해를 보내주고 있다. 모르는 척의 대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그마저도 능력이겠지.


오늘은 눈이 펑펑 왔다. 여름에 만난 사람들이 생각난다. 작년 겨울에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난달 껴안았던 사람의 이름은 잊었다. 내일 나는 누구를 사랑하게 될까. 주택가 창문을 향해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가지가 잘린 목련을 보고 별안간 코끝이 찡해졌다. 갈 곳이 없는 이야기들을 언젠가는 집으로 보내주어야만 한다.


내 친구들이 내 행복을 바라고 있다. 네가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그리도 감사한 마음이 있어서 나는 행복해져야만 한다. 고작 함박눈 한 번에 물 밀듯 밀려오는 감정에 잠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루 짜리 사랑을 이틀 동안 느끼는 일도 그만둬야겠지. 내 행복은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따뜻한 것으로 흐르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