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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산신령을 만나다

여행의 묘미

by 제이로사

꼭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본 곳 중 하나가 설악산 대청봉이었다. 남들은 여러 차례 다녀왔다는데, 나와는 계속 인연이 비껴갔다. 운동화만 신고 산길을 달렸던 다람쥐 패기가, 어느새 등산 장비 패기에 의지하는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설악산 대청봉은 사진으로만 힐끔거리고 나는 가끔 그 아랫동네에서 놀았다.


몇 년 전, 대학 졸업 후 동아리 후배들과 이십여 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학교 다닐 때 거의 매일 학교 앞 먹자골목을 함께 누볐던 후배들이다. 서로 볼꼴 못 볼 꼴 다 보면서 20대 절반을 보낸, 형제애(?)를 나눈 사이다. 나는 당시에 내 동생들보다 이 후배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나니 20대 얼굴 위에 유화 붓질로 덧칠해서 중년의 질감이 더해진 아저씨들 얼굴이었다. 이산가족 상봉같이 가슴 밑바닥이 잠깐 울렁했다. 하지만 우리의 캐미는 여전해서, 이십여 년이 아닌 이틀 만에 만난 듯이, 그들은 금방 나를 남동생 대하듯 했다. 남자 동기 한 명과 후배 세 명,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 뭉쳤다. 후배들은 당시 유행하던 100대 명산을 돌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운동과 담쌓은 내 몸과 나이를 생각해서 주저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이들에 이끌려 어느새 등산을 시작했다. 출퇴근만도 힘에 겨워하면서도 후배들과 약속이 잡히면 1박을 불사하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저질 체력으로 장비에 의지해, 몇 개의 산 정상을 찍었다. 그리고 설악산을 만났다.


1박 2일 일정으로, 우리는 서울, 경기, 광주에서 새벽에 출발해 오전 8시 30분경 오색공영주차장에 모였다. 오색약수에서 출발해 설악폭포를 거쳐 대청봉까지 가는 코스였다. 정상까지 네 시간 정도라 하니, 내 걸음으로는 다섯 시간이 넘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10월 말이라 일몰 시각은 오후 5시 30분 경이라 했다.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산속에서 밤을 맞이할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나의 걱정을 뒤로하고, 드디어 출발했다.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의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오랜만에 걷는 것이니 당연했다. 후배들은 30분에서 1시간만 걸으면 다리가 풀린다고 격려해 주었다. 가파른 산길에 나무뿌리와 줄기, 사람들의 발길로 자연스레 만들어진 계단 길에 접어들었다. 앞사람의 발걸음을 보며 걷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어보니, 일행 세 명은 어느새 앞서서 후루룩 올라갔는지 안 보였다. 내 뒤에는 후배 하나가 가이드 겸 따라오고 있었다. ‘오색 약수터에서 놀고 있겠다고 할걸!’ 나는 속으로 등반 시작을 후회하며, 가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때 내 바로 옆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가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160m 중반쯤 되어 보이는 작은 키에,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두툼한 몸집을 하고, 쇼트커트의 백발인 할아버지였다. 80세 가까워 보이는 할아버지는 뒷짐 진 자세로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놀라웠다. 두 개의 스틱을 안쓰럽게 틀어쥔 내 두 손이 민망했다. 할아버지 뒤로 따라붙었다. 그다음으로 내가 놀란 것은 할아버지의 발걸음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춤을 추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힘이 전혀 안 들어간 가볍고 사뿐사뿐한 발걸음이었다. 나도 할아버지 발걸음을 따라 해 보았다. 이크 에크~. 택견인가? 춤추듯이 박자를 타며 할아버지는 올라갔고, 할아버지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나도 올라갔다. 그렇게 얼마를 걷다가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몸이 가벼워져서 경사진 산길을 사뿐사뿐, 너울너울 올라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뒤를 계속 따라서. 한참 올라가는데, 정상 근처에 먼저 도착한 일행이 잠시 쉬었다 가자고 나를 불렀다. 잠시 그들을 보고 나서 다시 앞을 보니, 할아버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내 뒤에 따라오던 후배에게 물었다.

“내 앞서 걸어가셨던 할아버지 봤지?”

“못 봤는데”

“나 산신령 만난 것 같아”

“그래그래, 누나, 고생 많았다. 이제 다 왔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대청봉이야.”

설악산대청봉_2.jpg 설악산 단풍

후배들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헛소리한다고 여겼다. 정상을 향해 마지막 힘을 내서 올라갔다. 우리는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설악산의 산세는 근사했다. 내 평생 못 올 것 같았던 그 정상에 내가 서 있다니 기적이었다. 나는 파노라마 사진을 찍듯이 360도로 천천히 돌며 그 풍광을 눈 안에, 마음에 담았다. 깊은 산세가 품은 늦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다. 날씨도 맑아서 천리 밖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정상의 맛’은 짧다.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대청봉에 올라가서도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할아버지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청봉을 찍은 우리는 그 아래 중청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 도시락과 먹었다. 곧 폐쇄될 중청대피소에서 반드시 식사해야 한다는, 후배들이 만들어 준 추억이었다. 대청봉을 찍고 난 나의 체력은 고갈 그 자체였다. 문제는 하산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등산보다 하산이 더 어렵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대청봉에서부터 하산하기 시작했다. 벌써 다리에는 힘이 풀려 있었다. 자칫 방심하면 금방 미끄러질 것 같아, 발 앞부리에 적당히 힘을 주며 스틱에 의지해 한 걸음씩 옮겼다. 다른 사람들은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산속의 해는 더 빨리 진다. 동기와 후배들은 내려가자마자 차에 탈 수 있도록 준비하느라, 미리 앞으로 내려갔다. 경사가 높은 곳을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뒤에는 좀 멀찍이 새끼발가락에 탈이 탄 후배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부지런히 내려갔다. 사위가 점차 어두워져서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저 멀리 출발할 때의 숲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거의 다 왔나 봐’ 나는 마음이 탁 놓였다. 그때 내가 걷던 길은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넓이로, 가파른 산의 비탈길이었다. 순간 나는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고, 그 자리에서 균형을 잃은 채 앞쪽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채로 내 몸은 슬금슬금 아래로 미끄러져 갔다. 옆에는 잡을 것도 없었다. 이대로 가면 산비탈로 떨어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망연자실, 그 자세 그대로, 산길 끝까지 질질 미끄러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배낭을 잡았다.

“괜찮으세요?”

“헙! 휴우~”

나는 그렇게 살았다. 마침, 내 뒤에서 내려오던 등산객이 나를 잡아준 것이다. ‘산신령님이 나를 살려주시네’ 사위는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다리로 내려가다 나는 엉덩방아를 한 번 더 찧고서야, 간신히 일행들과 만났다. “니들 다 어디 있었어?!” 나는 반가움에 투덜거렸다. 설악산자락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숙소로 가서 그날의 무용담을 나눴다. 나는 설악산 산신령을 만난 것 같다고 얘기했고, 후배들은 설악산 대청봉 정상을 찍었다고 신나 했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

(드라마 <도깨비> 대사 중)



나는 그날 분명히 설악산 산신령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서, 내 뒤에서 산신령은 나를 도와주었다. 나를 산으로 이끈 것은 내 일행들이었고, 포기하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산신령이 내 곁에 머물렀다. 그 산신령이 지금도 산을 오르내리는 우리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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