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약상자에는 없는 치료제

여행의 묘미

by 제이로사

여행용 캐리어를 연다. 나의 몸이 여행 모드로 바뀌는 여행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싸는 때부터다. 이때부터 내 몸의 시계는 일상과 달라진다. 여행지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탄 듯 붕 떠서, 여행지를 걷고 있다. 구차한 일상은 대범하고 여유롭게 넘어가 준다. 갈아입을 옷과 슬리퍼를 챙겨 넣고, 여행용 세면도구와 화장품 가방은 지난번 다녀온 그대로 던져 넣었다. 마지막으로 약을 챙겨 넣는다. 지난 여행과 다르게 이번에는 진통제와 파스를 두둑이 챙겨 넣었다.


이번 여행은 출발 전부터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다. 칠 개월 전쯤에 운동하다 다쳐서 힘들게 회복시킨 허리 컨디션이 두 달 전부터 다시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 못 가면 아픈 몸에 마음이 져서, 계속 자리보전하고 누울 것 같아서였다.


7월 말에 꼭 여행 가야 해요.

꼭 가시도록 해야죠.


여행 가는 것을 치료 목적으로 천명하고, 한의원에서 침과 부황을 한 달 반 동안 거의 매일 시술했다. 조금씩 호전되기는 했지만, 칠 개월 전의 컨디션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내 몸이 이렇게 하잘것없었나, 실망하고 실망했다. 한의원과 결별하고 여행 출발 마지막 두 주는 정형외과에서 신경 주사와 도수치료까지 받았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과 도수치료사에게도 갈 때마다 강조했다. 마감 시한은 가장 훌륭한 전투력이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이었다. 복대와 허리 쿠션을 두 개나 챙겨 넣고서.


이번 여행은 조금 색달랐다. 소설 <범도>를 읽고, 작가와 함께 소설 속의 해외 항일유적지를 탐방하는 여정이었다. 6박 7일 동안 연변, 훈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얼빈, 대련 등의 도시를 다녔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두 번이나 넘었다. 우리나라와 러시아와의 외교관계가 경직되어 블라디보스토크 직항이 없어진 것이 두 번의 국경을 넘게 된 이유였다. 우리나라의 외교 현실이 나의 여행코스에 닿아 있었다.


여행 내내 작가의 소설 속 항일역사 현장 고증과 소설적 상상이 강의로 함께 했다. 여행에 함께했던 30여 명은 어느 결에 독립군이 되어, 소설인지 현실인지, 일제 강점기인지 2024년인지를 넘나들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의 승전으로 유명한 중국 도문의 봉오동에도 갔다.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 나와, 봉오동 지역에서 터를 닦고 살았던 우리 민초들. 그 흔적들이 멀리 너른 들판과 산세에 있는 듯했다. 봉오동전투는 그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과연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나도 선조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계속 질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독립운동 역사가 스며 있는 현장을 돌고 나서 ‘스며들라,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배사로 외치고 있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면 발에 채는 것이 한국 사람이라던 말도 옛말이었다. 그 시기 한국인 관광객은 우리 팀밖에 없었다.

고려인 민족학교에서는 고려인 교포 3세들의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공연에 열중한 교포 3세 청년들의 땀방울이 내 눈물샘의 임계점을 넘긴 듯했다. 그들의 공연은 척박한 타지에서 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절실한 마음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들의 조국, 우리나라를 향한 짝사랑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조국은 그들을 모두 잊은 것 같은데. 나에겐 이번 여행의 클라이맥스였다. 여행 떠나기 전 일상에서 치이고 뭉개졌던 내 마음이, 그들이 버티고 있는 삶 앞에서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허리 아픈 데에 제일 안 좋은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거라던, 출발 전 의사 선생님의 조언도 소용없었다. 이번 여행 일정은 그야말로 허리 컨디션에는 최악이었다. 소설 <범도>에 맞춤한 여행 일정이었기에, 여행 내내 거의 전세버스로 이동했다. 어떤 때는 쉼 없이 거의 5시간을 달리기도 하고, 국경을 넘을 때는 4시간 이상 정차한 버스에 갇혀 있기도 했다. 강행군이었다. 나는 처음 나흘 동안은 내내 복대와 허리 쿠션에 의지해 버스의 덜컹거림을 허리로 버텨내고 있었다. 끽소리 없이 그저 긴 시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앉아서 이동해야 했다. 이상하게도 집에 누워 있을 때보다 참을 만했다.



7일 동안 아플 겨를이 없었어요.

내 몸이 마치 풍선 인형 같아요.


어느 결에 나는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옆으로도 돌려 앉고, 앞으로 뒤로 휘어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치 풍선 인형처럼 자유자재로. 새벽 1시에 보드카와 늦은 저녁을 먹고 꿀 같은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 허리 아픈 것을 잊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나의 허리는 버스의 덜컹거림과 유적지 걷기 투어로 딱딱하게 굳은 근육을 풀어내고 있었다. 허리 쿠션과 복대는 어느새 캐리어에 들어가 있었다. 나의 몸은 회복되어 있었다.



나는 여행 내내

<백투 더퓨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간여행 버스를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갔다가 현실까지

시간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과거로 가는 버스에 타서, 7일 동안의 시간여행을 누리고 건강을 되찾았다. 약 100년 전 선조들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안타까움과 울분을 토해 보았고, 두 달 동안 한방과 양방이 해결 못 했던 허리도 치료되었다. 물론 한방과 양방이 앞서 내 몸을 90퍼센트 포인트 이상 회복시킨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도 어쨌든 7일간의 여행이 해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나의 여행은 갈 때마다 다른 충족감으로 채워졌다. 직장 일에 지쳐 있을 때는 짜릿한 해방감을 주었다.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고조되었을 때는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사는 것 별거 없다는 객관적 시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낯선 땅의 고속도로를 렌터카로 질주할 때는 낯선 나라 풍경의 한 장면이 되었다는 만족감으로 온몸에 전율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여행은 치료제라고.




약상자에는 없는 치료제가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잘 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제이다.


다니엘 드레이크 <웨스턴 메디컬 앤드 피지컬 저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맥주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