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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치리치 Nov 16. 2021

엄마의 엄마

‘엄마’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감성이 있다.


   거기에 ‘딸’이라는 단어를 더한다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왜 엄마와 딸은 만나면 티격태격하고 떨어져 살면 애틋하고 감정이 찐해지면서 눈물이 꿀렁이는 걸까? 이 감정은 대중적이지만 추상적이다. 때문에 술 좀 마셔봤다는 딸들이 엄마와 한 번쯤 나눠 보았을만한 대화로 딸과 엄마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을 적어보겠다. 기본 어투는 조금 신경질적이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살짝 짜증을 담은 톤이다.               

(엄)  "밥 먹어"
(딸)  "알았어요. 이따가 먹을게요"
(엄)  "지금 나와서 먹어! 두 번 차리게 하지 말고"
(딸)  "다이어트 중이야. 있다 먹을게요!"
(엄)  "다이어트 얼어 죽을 술이나 먹지 마라 이년아!
         빨리 나와서 먹어! 너 때문에 콩나물국 끓였어"
(딸)  "아! 진짜! 다이어트해야 한다니까"          

   어쩔수 없다는 듯 나와서 잘 먹는 딸의 모습은 전날에 마신 술과 염도 높은 안주로 퉁퉁 부은 눈. 질끈 묶어 올린 머리를 하고 목 늘어난 티셔츠와 수면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성인 여성인 우리는 묘사를 읽으면서 알고 있다. 저 모습으론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는 이런 못볼 꼴을 다 본다. 그리고 이런 몹쓸 물건을 시집 보내면서 결혼식 장에서 우신다.           

  

   친구는 결혼식 날 헬퍼 이모의 당부를 어기고 눈물 바람을 만들었다. 그 말인즉슨 '신부님, 부모님께 인사하실 때 어머니랑 눈 마주치시면 안 돼요!'였다. 그렇다 엄마와 딸이 그런 사이인 것이다. 같이 있을 때는 짐인 듯 짐스러운, 하지만 헤어진다 생각하면 또 마음이 시큰해지는 알다가도 모를 사이이다.                

  

   결혼을 하게 되는 딸의 마음은 '엄마한테 더 잘할 걸' 그런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우리 딸 걱정이네' 그 순간 그렇게 짠하고 또 짠한 사이이다. 근데 요즘은 결혼을 하여도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주말이든 주중이든 맘만 먹으면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결혼을 하게 되는 배우자는 본인의 활동 반경 내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혼집은 부모님 집 근처이거나 멀어도 자가용으로 한 시간 내외의 거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데 만나기 힘든 것도 아니고 완전한 헤어짐도 아니고 정략결혼도 아닌데 결혼을 할 때는 왜 그리도 눈물이 나는 것일까? 그리고 이상하게 타인의 결혼식인데 그 상황에서 내가 울컥해지는 것은 또 왜일까?      


   내 마음이 울컥하는 정돈데 결혼을 하는 당사자나 보내는 부모님은 내 마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마음이 울컥울컥 하실 것이다. 내가 앞서 결혼을 하는 딸과 어머니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라며 추측하는 건 추측이지 사실 그 마음이 한마디로 설명이 되겠는가. 결혼이 참 여러 사람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결혼을 한다고 하면 과제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사실 결혼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이다. 결혼은 생각할수록 신기한 상황인 것 같다. 추측해 보건대 결혼하는 딸을 보며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는 ‘우리 딸이 다 컸구나’ ‘내가 긴 시간을 딸을 키워 보냈으니 이제는 끝이다. 좀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하시며 노후의 일정을 꿈꾸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첫 시집을 보내는 어머니의 생각이실 듯하다. 시집을 보내는 것이 처음이 아닌 엄마는 일단 일인 다역을 각오하신다. 자식과의  용돈 거래를 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고 혹은 나는 못하니 네가 해라 등의 엄포를 놓으시기도 한다.          

   

  엄마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엄마는 시집을 보내도 엄마일이 끝나지 않는다. 분명히 시집을 보냈는데 자꾸 반찬을 해준다. 엄마는 애를  키웠는데 딸이 낳은 애를  애처럼 업고 있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어도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딸이다. 엄마가 엄마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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