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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치리치 Nov 19. 2021

남사친의 결혼식

    최근에 남사친의 결혼식에 갔었다. 나는 친구가 없는 편이라 무척이나 오랜만에 가게 된 결혼식이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라 그런지 식장 안쪽보다 바깥에 사람이 더 많아서 사람이 별로 없는 식장에 앉아 결혼식을 끝까지 보았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라 양가 아버님께서 축사를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신부 측 아버님의 편지한 줄이 생각난다.                    

  딸을 예쁘게 키워 준 내 배우자에게 감사한다.

    저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기억이 담겨 있을까. 저 말을 듣는 순간 20년 넘게 자식을 키우며 함께 지내온 날들이 두 분에게 주마등처럼 스치지 않았을까?               

  

    주례가 없는 결혼식에서 아버지의 편지는 늘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 편지에 본인의 배우자를 향한 감사의 멘트를 적어서 읽어주신 분은 처음이었다. 마음이 꿀렁거리며 생각이 많아졌다.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저런 남편을 둔 아내는 행복하겠다. 그다음은 저러한 감성을 가진 아버지의 딸이라니 저 신부는 인성이 좋겠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사친은 신부에게 저러한 감성을 주는 남편이 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었다.               

  

  적다 보니 생각나는 편지 내용이 또 있다.          

집에서 뒷받침 해주지 못했지만 네가 너의 길을 잘 찾아서 가주어 너무도 고맙다.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세상에! 결혼을 시키는 부모님의 고맙다는 말은 자식의 입장에서 눈물이 나지 않고는  배어내는  아닌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전생에 대입해서 하는 말이 있다.     

  

    부모로 태어난 사람은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전생에 너무도 큰 빚을 져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부모가 되었다는 말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는 순간 이유도 없이 자식에게 많은 것을 주게 된다. 시작부터 부모는 본인의 피와 살을 나누어 자식을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부모이기에 본인의 인생을 본인의 삶과 부모의 삶이라는 역할로 나누고 의무를 다하여 자식을 키운다. 그렇게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부모는 자식에게 인생을 나누어 준다. 그렇게 인생까지 나누어 본인을 키워준 부모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자식은 감사함에 눈물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감동적인 부모님의 말씀이 끝난 뒤 신랑신부의 혼인 서약문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거기에도 여러 항목이 있었는데 그중에 기억이 나는 내용은     


신랑 ‘아내가 명품가방을 몰래 사도 모른 척해 주겠습니다’     

신부 ‘남편이 게임기를 몰래 사도 모른 척해 주겠습니다’           

신랑 ‘아내에게 절대 먼저 화내지 않겠습니다’     

신부 ‘남편에게 절대 이유 없는 바가지를 긁지 않겠습니다’                

 

   난 저 내용을 듣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들도 알 것이다.               

 

   만 19세 이상의 남녀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도 ‘성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나이를 먹은 성인이지 지혜와 덕은 아직 부족하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지만 결혼을 하면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싸움이란 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 아닌가? 난 무관심보단 화를 내고 싸우는 것이 건강한 관계 개선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갑자기 명품이 사고 싶기도 하고 갑자기 게임기가 미친 듯이 사고 싶어 질 수 있다. 살다 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이유 없는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인 서약문의 약속은 아마도 이런 거 저런 거 다 이해하고 살겠다는 그 둘의 결심일 것이다.                    

 

    아버님이 편지를 읽으면서부터 식장에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앞을 보고 있어서 뒷모습만 보였지만 신랑이 신부의 등을 토닥이는 모습으로 신부가 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식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훌쩍거리는데 신부라고 울지 않았을까.


   그렇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20대 때 술 마시며 철없이 놀던 남사친은 아내를 보듬어 주는 자상한 남편이 되었다. 친구는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신부를 잘 이끌어 줄 것이다. 친구가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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