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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치리치 Oct 24. 2021

친구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친구는 비혼 주의자였다. 근데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다.    

                      

   친구가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 난 놀랐다. 결혼을 한다고 할 때도 놀랐는데 결혼을 하고 1년 도 되지 않아서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 나는 놀람의 이유가 충분했다. 옛말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국가적 측면에서 보자면 출산율이 1% 도 안 되는 이 시대에 친구는 5년 동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대단스럽단 생각도 든다.               


   친구는 내가 본 임산부 중에 가장 씩씩했다. 첫째 출산 두 달 전에 경주로 여행을 함께 다녀 올 정도로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친구가 거의 만삭임에도 “너 몇 개월 이지? 여행가도 되지?” 라고 물었으니 긴말은 입이 아프다. 


   이렇게 말하면 내 친구가 아무 일도 없이 출산을 했을 것 같지만 내 친구의 첫 출산은 급작스러웠다.                               

   보통 사람들은 본인의 일이 아니면 타인에게 생기는 변화는 무디게 느낀다. 내가 경험하는 일이 아니니 현실감은 떨어진다. 모르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니 금방 지나가고 쉽게 해결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의 임신을 그렇게 느꼈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친구의 출산소식은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게 했다.               


   이번에 친구한테 물어봐서 알았지만 그게 37주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혹시 걱정하실 분들을 위해서 앞서 얘기 하자면 현재 친구의 첫 아이는 5살이고 너무나도 건강하다. 지금은 상위 15% 안에 들 정도로 성장이 좋다.          


   아무튼 급작스러운 출산 이후에 병문안을 갔을 때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옮겨 적어보자면   

  “임신 7개월이 넘어가면 애기가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라고 양수도 엄청 늘어나서 배가 더 빨리 불러온다고 했거든?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한 달 주기였던 검진을 이 주에 한 번으로 더 자주 오라고 하더라고 일주일에 한 번도 괜찮다고 했는데 나는 임신 당시 몸의 이상이 없었으니까 이 주 단위로 검진을 갔는데 이 주 전에 검사한 양수 양이 이 주 후에도 변함이 없다는 거야. 담당선생님이 지금 소견서 써줄 테니까 바로 대학병원에 전화해서 예약 잡으라고 그러더라고 근데 그 말 듣는데 완전 무섭더라.

  뭐가 잘못 되는 건가 싶었어. 양수가 늘지 않는 게 왜 문제냐면 양수는 섭취하는 음식성분도 있는데 그 양수를 태아가 먹고 태아가 배출하는 소변의 양도 있어서 양수 양은 더 늘었어야 한다는 거지 양수가 늘지 않는다는 건 애가 먹기는 하는 데 배출을 못한다는 거니까 태아의 상태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였어. 그래서 대학병원에 전화해서 상황을 얘기하니까 지금 바로 오라고 하더라고 아이를 빨리 출산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던 거야. 태동 검사만 3시간을 했어. 근데 애기가 움직임이 별로인 거야.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바로 입원하라고 하고 지금은 엄마가 애기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빨리 수술해서 꺼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입원 이틀 만에 수술하고 낳았어. 근데 당시의 양수가 적으니까 자궁의 공간이 좁았고 그래서 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애기 왼쪽 발목이 꺾여있었데. 호흡도 원활하지 못해서 청색증이 왔고 지금 황달도 심하고 그래서 애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지금 4일짼데 아직도 애기 못 안아봤어.”        


  친구는 말끝에 “근데 우리 애기는 건강한거야.” 라며 같은 병실에 있는 산모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6인실이었는데 그 중에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있었다. 두 태아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태아의 심장이 한쪽은 너무 비대해지고 반면에 한쪽은 공급이 빈약해지니 둘 중에 한 생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였다. 그 산모는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한 아이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맞은편에 본인이랑 같은 이유로 들어온 산모가 있었는데 그 산모의 아기는 신장에 문제가 있었고 출산과 동시에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병원엔 태아의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었고 아이는 다른 병원으로 수술하러 가고 엄마는 그 병원에 남았다고 한다. 내 아이의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그런 경우를 듣고 있자니 ‘어떡해.’라는 생각과 ‘우리 애기정도면 정말 건강한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듣는 입장에 나도‘어떡해.’라는 말이 나오는데 직접 경험한 임산부 본인에게는 억장이 무너 졌을 것이다. 나였다면 상실감에서 생기는 우울감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 뱃속에 아이를 품은 엄마는 태아를 느끼는데 당연히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를 못 만났을 때의 상실감을 이겨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 수 있을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에게는 피와 살을 나누어 주는 일인데 아이를 잃었을 땐 어떤 말로 그 마음이 설명이 되겠는가?     


  친구에게 육아에 대해서 물어보면 본인은 육아5년차의 초보 맘이라고 말한다. 생은 길고 20년 이상의 장기전인데 본인은 지금부터 전력 질주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다. 이런 저런 그런 마음 이겨내며 지금껏 아이를 키우니 그 육아라는 이름의 사건사고는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내가 모르는 이야기와 힘듦을 친구는 이겨 내고 본인의 모습보다는 엄마가 되려고 하는 중일 것이다. 본인의 피와 살을 나눈 혈육이 둘이나 되는데 거기에 장기전 마라톤이라니 이래서 엄마는 강하다고 하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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