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기

9월, 뇌우, 시작일기

by 이수연

별안간 뇌우가 왔다


살면서 이렇게

비가 내리는 건 드물지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쓰러지던

가로수가 생각났다


무수히 쏟아지는

빗방울이

가려놓은 풍경들


그것이 죽음 같아서

『미래의 손』을 읽는다


나는 차도하 시인을

아주 좋아하는데


세계, 도사리는

부조리와 폭력

울음 섞인 목소리


미지의 화살촉을

정면에서 받아내며


피 흘리는 몸으로 쓰는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





죽은 사람의 글은 더 꼼꼼하게 읽힌다. 특히 그의 일생과 관련하여.

내가 죽어도,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내 글을 대충 읽어주면 좋겠다.

다음 작업을 기대해 주면 좋겠다.


반대로 내가 살아 있을 땐, 죽은 사람처럼 나를 꼼꼼히 읽어주면 좋겠다.

이 사람이 어째서 죽게 되었는지, 이 사람이 죽기 전에 무엇을 썼는지,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차도하, 「죽은 사람」,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나는 오늘 가까이 온

그림자에 얼어붙었고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

지금 죽어버리면


말하지 못한 고마움과 사랑을

영영 잃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쓰는 편지는

유서가 될 것이고


차도하의 말처럼

꼼꼼히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나에게 새긴

무늬를

더듬어 봤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내가 할 수 없는 말을 구분하는 데 지쳤다. 무엇이든 다 말해버리고 싶고,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무엇이든 다 말하려다가도 문득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이 있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다가도 문득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어떻게든 말하게 될 것 같고, 어떻게든 말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막막하다. 너무 좁은 방에서 너무 많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겨보고 싶다. 잠깐이더라도 마음에 드는 배치를 발견하고 싶다.


-차도하, 「시작노트」,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考 차도하 시인


여기는 너무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 보여

냄새도 나지 않네


네가 얼른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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