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서늘한 바람, 시작 일기
우선 감사합니다
주말 저녁
스팸 문자처럼 날아든
전화를 받아주신 일 말입니다
그날 저는
구체적 죽음을 예약했고
현관문
신을 신다가 억울해졌습니다
시시한 죽음의
이유를 알 것 같아
누군가는
단조를 벗어난
당신의 기쁨을
헤치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비겁한 마음으로
(받을 것이라는 믿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신음이 끊기던 순간
죽음은
비로소 유예 되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
목숨을 빚진 셈입니다
매미의 허물이 있는
창문
비가 가려놓은 풍경이
어둠과 겹치며 말합니다
운이 좋았지만, 다음은 아니다
기쁨이 나를 데려간
푸줏간
어떤 냄새도 나지 않고
어떤 피도 흐르지 않는
토막 내놓은 붉음
진열장의 조도는 높아
부끄러움과 수치심까지
밝아집니다
짐승들이 사라진 들판 그들의 영혼은 어디에서 헤매는가*
이 문장을 저는 사랑합니다
그 풍경을 저는 사랑하지요
기쁜 마음으로
벗들의 연락처를 지웁니다
사랑이 끝나기 전에
장난감 죽음이 있었다면
슬픔의 운용법을 알았다면
나아졌을까요?
우연한 미래의 생존자
살아남은 죄와 모멸이
쐐기처럼 박힙니다
유예하고 가려놓은
침묵의 말이
내장을 녹입니다
한 사람이 갇힌 방에서
살기 위하여 창문을 넘는 일
삶을 예비하기 위해
겉옷과 가방을 던지는 일
슬픔과 고통 아닌
생명의 명찰을 달고
시행되는 낙하
내가 빚은 죽음의 얼굴이
우스꽝스럽다는 것,
그것이 제가 저지른 무례입니다
선생님.
늘 평안하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
우리는 들어본 적 없는 숲길을 헤쳐 가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불빛이 새어 나올 창문 하나 없는 길. 손전등 없이 횃불도 없이 휴대전화도 없이.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렸지만 눈에 익은 어둠 역시 완전한 어둠일 따름이었다. 조도 없음. 구조를 지우는, 구조 없는 공간으로 유창하게 펼쳐지는 어둠. 있다는 믿음 없이도 있는 어둠. 여기 유령이 있다고, 사람이 있다고, 귀신이 있다고, 호랑이나 신이 있다고 해도 있다고 믿으면 있게 만드는 어둠.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는 소리가 필요했다. 사락사락 종아리를 스치는 풀잎 소리, 풀을 밟는 발자국 소리. 소리로만 존재하는 사물들. 투명한 몸. 몸이 투명해져서 그런가, 걸어도 걸어도 발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 좋네. 말해봐도 웃음은 나오질 않고 정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무릎을 구부리며 계속 걸었다. 이것이 어떤 풀인지, 얼마나 뾰족한 잎을 가졌는지, 우리의 종아리에 어떤 모양의 생채기를 만드는지. 눈에 익을수록 눈동자를 어둡게 만들기만 하는 이 어둠 속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불빛. 저 멀리 보이는 불빛 하나. 흔들리고 점멸하는 아주 작은 빛.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조금씩 커질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그런 빛.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 도착할 빛 앞에서 무엇이든 있게 만드는 믿음은 불가능했다. 틀렸다. 제가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일까요? 제 믿음의 흐릿함이 문제일까요? 제 마음의 약함이 문제일까요? 또 저 멀리 보이는 빛을 상상하고 말았습니다. 투명한 손을 잡고 투명한 발의 무게를 느껴보려 애쓰며 우리는 계속 걸었다. 투명한 발등을 파고드는 어둠을 들어 올리며.
-김리윤, 「관광」, 『투명도 혼합 공간』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방 안
날개처럼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