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깃털

9월, 후덥지근함, 시작 일기

by 이수연

병원 승강기가

열릴 때마다

추락하고 있다


문에 기댄 나는

어둠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내 손은 너무 뜨거워

빙하에 손을 넣어도

털을 뽑아도

더운 피가 식지 않아


펭귄의 다이빙

내 몸이 유선형이었으면 좋겠다

벗겨진 채로

공기에 저항하고 싶어


잎의 속도로

낙하하고 있다







밤엔 명작을 쓰지



극장에서 돌아와 글을 써요 나는 지저분하며 조그마한 구역에 살아요 항상 떠날 궁리를 하죠 안정감이 밤물결 소리를 내면 떠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나를 여기 데려다 놓고 데리러 오지 않는 사람이 혹시나 들를지도 몰라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방 모서리엔 낡은 회색 슬리핑 백이 있어요 오늘은 자지 않고 명작을 써요 반투명한 해파리처럼 생긴 전등을 켜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 이어링을 만지작거리며 명작을 써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은밀하고 거칠며 쓰라린 글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죠

그렇습니다 맞은편 복도로 햇살이 파도처럼 밀려오죠 나는 밤새 책상을 부여잡고 표류한 셈이죠 그게 제 역할 같아요 나는 어떤 게 명작인 줄 몰라요 맥베스 세트장에서 내게 말했죠 그래도 너는 순정을 가졌잖니 대표님 순정부품 같은 말씀 마세요 너무 비싸거든요 눈을 뜨면 나는 조그마한 구역의 무대 뒤에서 뜨거운 조명을 만지고 있습니다



-김이듬, 「밤엔 명작을 쓰지」 전문



김이듬 시인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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