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을 했다

8월 수요일 시작 일기

by 이수연

몸이 좋지 않아서

무아지경으로 잤다

9시 20분이었다


정호승문학관에 김민정 시인이 온다

그녀는 시인, 편집자, 출판사 대표

형형색색의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사람


시를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가 지금도 자주 듣는 말이라며

까뮈로 대답한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지냈습니다'


현정과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길

반가운 얼굴을 봤다

나만 반가운 것 같아 애써 기색을 숨긴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 식당을 갔다

누군가 대접하는 날 오는 곳이었다

음식이 정갈하고

간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만

아는 사람을 만날까 신경쓰였다

정직하게 살지 않은 탓이라 여겼다


오후에는 상주작가

변희수 시인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첫 줄을 쓰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포이자 마술이며, 기도인 동시에 수줍음수치심이다."

-존 스타인 벡.


수줍음에 줄을 그어 수치심으로 적었다

내가 쓰는 글은 수치스런 생활의 고백이다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된다. 더 나은 소설을 쓰면 더 나은 소설가가 되는 것뿐이다."

-정용준 (소설가)


쓰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것이 책임지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미 쓰는 것을 일로 여겨

그냥 하는 것이라는 마음이 길항한다


파편적으로 그려지는 무늬가

완성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낮고 느슨한 풍경을 보자

또래의 소방관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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