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입구에 빨려 들다
그날 아침, 회사 복도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 프린터에서 종이가 뽑히는 소리,
누군가 슬리퍼를 끌고 지나가는 작은 마찰음까지.
그 정적을 깨고
갑자기 사무실 입구에서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 여세요! 서울남부지검에서 나왔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키가 큰 여자 검사가 앞에 서 있었고
그 뒤로 수사관들과 포렌식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검은 가방과 장비를 든 채 줄지어 서 있었다.
특별한 무전기 소리도, 영화에서 보던 요란한 소동도 없었다.
대신, 이미 모든 걸 알고 왔다는 듯한
이상할 만큼 차분한 자신감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회사 임원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확하게 이름을 불러 호명했다.
“○○이사님 어디 계세요?” “△△전무님은요?”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것들은
이미 다른 누군가의 손에 다 넘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회사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단일 최대주주였다.
한때 ‘코인 붐’의 수혜를 제대로 입으며
주가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던 곳.
실제 회사 매출은 연간 200~300억 수준인데,
한국거래소 시총가치는 1조를 훌쩍 넘겼다.
자본시장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기업이었다.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나는 솔직히 설렜다.
“한 번 크게 될 수 있겠는데?”
“이 회사에서 IR이랑 홍보를 쥐고 있으면
내 커리어도 한 단계 올라가는 거 아닐까?”
대표는 카리스마 있고 말발 좋았고,
여동생을 계열사 대표이사로 앉혀놓고
회사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었다.
시장에서 이미 ‘위험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 그걸 “좀 거칠 뿐인 사업가 이미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너리스크는 늘 예상보다 더 어둡고,
더 깊고, 더 빨랐다.
입사 초 무언가 느낌이 쎄했을 때 깨달았어야 할 것들이,
비로소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의 한 탐사보도 매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0탐사 ㅁㅁㅁ기자입니다.
거기 ㅇㅇㅇ회장님 계시죠?"
순간 당황했지만 우리회사는 표면상 회장이 없다고 말해야 했다.
"아닙니다, 처음 듣는데요?"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기자는,
"에이, 000대표 오빠되시는 분이 ㅇㅇㅇ회장님 아닌가요?
여배우 ㅁㅁㅁ씨와 열애중이신 걸로도 확인되었는걸요"
순간 놀랐다. 나만 알고 있을,
아니 나 조차도 팩트체크가 안 된 회장님의 열애설과
회장님의 기사가 노출될 거란 사실에...
그렇게 회사에 대한 부정기사는 연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단독보도가 나간 뒤로는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싣렸고,
개인주주들의 전화도 빗발치기 시작했다.
단독보도가 나간 지 약 일주일이 되던 아침,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아니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실제 놀랐던 것은,
우리 회사에 수사하러 온 여자 검사가
이미 우리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다.
여검사는 단번에 상황을 장악했다.
“지금부터 회사 서버, PC, 문서 일체 압수하겠습니다. 협조 안 하시면 더 복잡해질 수 있어요”
포렌식 담당자들은
말없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PC 본체를 열고,
USB 장비를 꽂고,
화면 속 데이터들을 복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컴퓨터 화면에 있던 수많은 보도자료와 IR 자료,
대표 멘트 초안,
기자들과의 대화창이
모두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는 장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그냥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인데…”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그런 변명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 순간의 공기는
어떤 말도 정당화해주지 않을 것 같은 무게를 갖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외부감사인과의 통화가 부쩍 늘었다.
감사보고서 제출 일정이 지연되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 오갔다.
“자료 좀 더 보내달라”, “이 거래 구조를 다시 설명해달라”는 요청이
점점 더 집요해졌다.
그리고 결국
감사 의견 거절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거래정지.
차트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선이 생겼고,
10만 명이 넘는 소액주주들이
분노와 절망이 섞인 목소리로 회사를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에
나는 있었다.
“회사 입장은 뭡니까?” “진짜로 상장폐지가 되는 겁니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IR과 홍보를 겸하던 1인 담당자는
누군가의 분노를 받아낼 ‘방패’이자,
모든 욕설과 원망이 쏟아지는 ‘벽’이었다.
압수수색 이후,
회사 앞에는 소액주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십 명이었고,
어느 날은 수백 명이었고,
결국 수천 명 규모로 늘어났다.
손팻말, 피켓, 확성기, 기자들.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중에는
내 부모님 세대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내 또래 아빠, 엄마도 있었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 돈 돌려내라!” “사기 아니냐!” “회사 입장 밝혀라!”
하지만 회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임원들은 말을 아꼈고,
실무진인 나는
그 중간에서 쉴 새 없이 전화를 받았다.
“○○신문입니다. 입장 좀 주시죠.” “경제방송인데요, 대표 인터뷰 가능합니까?” “지금이라도 자진 상장폐지 철회할 수 있는 겁니까?”
그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난하게, 정제된 단어만 골라 대답해야 했다.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검찰청의 복도
회사 거래가 정지되고,
또 압수수색 이후로 사무실이 휑하던 어느 날,
나는 서울남부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회의실과 비슷한 조사실,
탁자 위에 놓인 녹음 장비,
내 앞에 놓인 진술서.
검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공시 문안은 누가 작성했습니까?” “대표의 지시는 어떤 방식으로 내려왔습니까?”
“당시 회사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나는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본 만큼만 대답했다.
추측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누군가를 괜히 감싸지도 않으려 했다.
조사가 끝나고 복도에 나왔을 때,
다리가 잠시 풀렸다.
휴대폰을 켜니
부재중 전화 수십 통이 찍혀 있었다.
“형, 기사 봤어?” “너 괜찮냐?” “혹시 너도 조사받은 거야?”
나는 대충 괜찮다는 문자를 돌려보내며
현관 출구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이상할 만큼 맑았다.
집에 돌아와
잠든 아이 얼굴을 보다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아내는 조용히 옆에 앉았다.
“나… 잘못한 건 없는데, 그냥… 너무 힘들다”
아내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당신 잘못 아니야. 그냥, 우리가 이상한 시대를 지나가는 거겠지”
그때 처음으로
“아, 이 경험은 언젠가 글로 써야겠다.”
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건 단순히 내 커리어의 실패나 꼬임이 아니라,
이 시대를 지나가는 한 직장인의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또 시간이 약 한달이 흘렀다.
12월 크리스마스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내가 모시던 CFO와 평소때처럼 점심을 함께 했다.
그분께서는 오늘 오후 남부지검으로 소환통보를 받으셨다고 한다.
이미 난 한 달 전쯤에 조사를 받았것만,
이제와서 CFO를 부르는 것도 사실 놀라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제 오후 남부지검에 조사 받으러 갔다는 CFO는
자택에서 투신했다는 헤드라인이 속보로 떴다.
"뭐지..? 분명 나이든 노모를 모시고 계셨고,
어제까지 나와 밥먹을 때 마냥 평안해 보이시던 분이..
어째서..? 어째서 투신을 하셨단 말인가?"
2023년 12월 마지막주,
첫눈이 내리던 그날 나는 장례식장에 갔다.
나와 함께 일하던 CFO를 보내드리기 위해...
결국 회사는 상장폐지의 길을 걸었다.
주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투자자 게시판은 욕설과 절망으로 가득 찼다.
나는 회사를 나왔다.
어떤 화려한 퇴사식도,
아무런 박수도 없었다.
그저 또 한 번의 퇴사 로그만이 남았다.
“6번째 직장 — 가상화폐 거래소 단일 최대주주 회사, 오너리스크와 함께 무너진 곳.”
그리고 마음 한켠에
아주 작은 문장이 하나 남았다.
“그래도, 이 모든 걸 부끄러워하지는 말자.”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꺼내나보다 더 위대한
누군가에게 건네줄 수 있다면,
이 실패도 나름 괜찮은 재료가 될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