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N번째 이직은 처음이지?
상장사에서의 마지막 출근 날,
누구도 내게 퇴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책임도, 자리도, 명함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설 무대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조용히 깨달았다.
수많은 공시와 언론 대응,
투자자들의 시선과 숫자의 압박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가 닳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진상폐 공시가 올라온 그날,
회사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상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제 IR·홍보는 필요 없습니다”
회사가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정확히 이해한 문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걸어 나왔다.
제 발로, 내 선택으로.
이직을 결심하는 순간,
쌓여 있던 긴장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퇴직금으로 버티며
취업포털 사이트를 켰고
마치 신입사원 때처럼
무수한 이력서를 던져 넣었다.
“나는 6년 차 경력자다. 누군가는 날 필요로 하겠지”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연락은 거의 오지 않았다.
축의금조차 부담스러웠던 시기,
친구들의 웨딩홀을 홀로 빠져나오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소망아, 아빠가 버틸게”
그러던 어느 날,
강남의 한의원 프랜차이즈 홍보실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조건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선택 여지가 없었다.
출근 첫날,
강남 대형 건물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어둡고 습한 공기,
폐쇄된 사우나의 오래된 냄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보인 장면.
형광등이 꺼진 복도, 그리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빛.
잠깐의 침묵.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론홍보는 이제 막 시작됩니다. 당분간은 저를 도우며 적응하면 됩니다”
조금 불편했지만
나는 버텼다.
가족 때문에,
삶 때문에.
하지만 일주일 만에
나는 알았다.
여긴 내가 숨 쉴 곳이 아니다.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무실에는 속삭임이 흘렀다.
“아니, 왜 남자를 뽑은 거야?” “경력직이라더니 뭐 얼마나 한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문이 닫혔다.
전화가 울렸다.
“홍보대행사입니다. 팀장급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숨을 들이켰다.
기자 인맥도 많았고
유통 클라이언트라 업무 강도도 적당했다.
워라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한의원 프랜차이즈 팀장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다른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2주 만의 퇴사. 벌써 5번째 직장.
그리고 나는 홍보대행사 팀장으로 새롭게 출근했다.
홍보대행사 생활은 예상 외로 좋았다.
팀원들은 밝고 반갑게 맞아줬고
내 말을 잘 따라주었다.
업무도 익숙했고
기자들은 내 연락에 흔쾌히 힘을 보탰다.
“드디어 내가 자리 잡았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균열은 아주 작은 틈으로 찾아왔다.
대표는 경상도 4선 국회의원의 아들.
부유했고, 유학파였고,
사업 감각도 있었다.
하지만,
20살 가까이 어린 사내 여직원과의 교제,
술자리에서의 거만한 태도,
정치적 계산이 묻어나는 말투는
나를 조금씩 냉소하게 만들었다.
부사장은 메이저 경제지 기자 출신.
말은 유려했지만
현장에서 AE들이 겪는 문제와 고통에는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고객사 수주를 계속 따오면 본부장까지 올라갈 수 있어”
대표의 말은
달콤했지만 역겨웠다.
그건 비전이 아니라 거래였다.
그리고 나는 또 결심했다.
“멈추지 말자. 더 늦기 전에 다시 나가자”
그때
상장사 홍보실에서
IR 담당을 찾는 연락이 왔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단일 최대주주,
주가도 뜨겁고
시장의 관심도 폭발적이던 기업.
“여기라면 다시 한 번 걸어볼 수 있겠지”
나는 또 한 번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인생 가장 거대한 폭풍의 문을 연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