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좋은 팀장을 만나는 것도 복이다

무너지는 팀, 무너지는 신뢰, 그리고 또 한 번의 이직

by 심취한홍보맨

겨울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가상화폐 거래소 단일 최대주주 회사가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자
나는 더 이상 그곳에서 미래를 볼 수 없었다.
처자식이 있고,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그러나 절박하게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회사가 있었다.
국내 1위 폐기물 처리 기업.
연 매출 1조에 가까운, 죽어가는 기업이 아니라 ‘살아서 뛰는 기업’.
직원 평판 사이트에서도 이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성과 보상도 좋고, 조직문화도 안정적이라는 평이 대부분.
나도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커졌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그 회사의 홍보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견실한 기업’이라는 첫인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첫 출근 날, 조직도는 나쁘지 않았다.
윗선에는 여자 사수와 남자 팀장이 있었고,
아래로는 두 명의 여자 직원.
규모도 적당하고, 커뮤니케이션 구조도 안정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입사 사흘째,
첫 번째 균열이 드러났다.

팀장이 나와 사수를 회의실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사실… 팀 내에 갈등이 좀 있습니다.
아래 직원 둘… 문제가 있어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애도 있으니 조심 좀 하시고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입사 3일 만에 듣는 말 치고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조심하라’는 단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게 시작일 뿐이었다.


문제의 두 직원, 그리고 첫 충돌

며칠 뒤, 나는 아래 직원 둘과 함께
프로젝트성 업무 회의를 주관하게 됐다.

나는 준비를 해갔다.
자연스러운 업무 분배와 방향 제시,
그리고 그들이 맡을 서브 역할까지 고려된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노트북도 열지 않고, 시선은 창문 먼 곳에 고정돼 있었다.


“자, 그럼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자료 공유해볼까요?”


“아… 저희 아직 못 했는데요.”

“그럼 방향성은 좀 생각해봤나요?”

“…그냥 팀장님이 주시면 저희가… 따라갈게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가 팀장이든 아니든,
업무는 기본적으로 각자 준비해서 맞춰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 곧바로 터졌다.

회의 중,

한 직원의 가방에서 핸드폰 화면이 반짝였다.

녹음 중.

나는 즉시 물었다.


“지금… 녹음하고 있는 건가요?”


“아… 네. 회의록 정리하려고요.”


회의록?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초안 아이데이션이었다.
정리 대상도 아닌 생각의 조각들.

그 순간, 등골이 싸늘해졌다.

‘이 조직… 뭔가 잘못됐다.’

팀 전체에 스며든 갈등의 냄새

알고 보니
이 두 직원과 내 사수는 이미 ‘밥도 함께 먹지 않는 관계’였다.
팀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했고,
팀 내 갈등은 이미 폭발 직전의 냄비였다.

그 와중에 팀장은
나를 유독 따로 불러 지시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는 내 사수의 업무마저 은근슬쩍 나에게 떠넘겼다.

사수는 상처받았다.
나도 불편했다.
직원 둘은 이미 마음을 닫아버린 상태였다.

팀이 아니었다.
국지전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내 감사'가 시작되었다

출장도 아니었고, 공지도 아니었다.
감사실 직원들이 갑자기 팀으로 내려와
차례대로 우리를 불러 조사하기 시작했다.

주제는 충격적이었다.

팀장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


팀장·사수·나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팀원이 제출한 녹취록 다수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내 목소리가 어딘가 저장되어 있고,
어떤 대화가 어떻게 왜곡돼 전달됐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감사실 직원 앞에서
나는 진실 그대로만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팀은 완전히 붕괴했다.

팀장은 해고


내 사수는 갑작스레 육아휴직 신청 후 잠적


밑에 직원 둘은 위로금 6개월 받고 권고사직


홍보실 문은
이틀 만에 철저히 비워졌다.

나에게만 주어진 선택지

팀이 해체되던 날,
CHRO가 나를 따로 불렀다.


“전 과장님.
선택하시죠.
위로금 6개월 받고 나가시든지…
아니면 자금팀으로 이동해서 홍보 기능을 맡든지.”


나는 말을 잃었다.
입사 3개월 만에 이런 선택을 강요당할 줄 몰랐다.

왜 나였을까?

이유는 명확했다.

회사 전체가 매각 절차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
대주주인 모회사가 PF 부실 사태를 겪으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우리 회사도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자금팀은 매각 과정에서 중요한 부서였고,
공식적 홍보 기능이 필요했기에
유일하게 나만 이동 대상이 된 것이었다.

나는 결국 자금팀을 선택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자금팀은 또 하나의 지옥이었다

팀 구성원은 약 10명.
자금 조달, 수금, 결제, 보고 등
각자 역할이 명확한 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팀장이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누구보다 교활하고,
치졸하고,
권력 사용에 능숙한 인물이었다.

그는 사내 규정에도 없는
‘연차 쿠폰’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누구에게 줄지는 전적으로 그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

근태도 엉망이었다.
하루에 2~3시간 얼굴만 비추고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가장 치욕적인 장면이 찾아왔다.

“야 전과장. 너 지금 뭐하는 거냐?”

과거 홍보실에서 하던 업무 중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던 이슈가 있었다.
나는 담당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해결 방향을 찾기 위해 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팀장은
며칠간 사무실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을 비춘 날,
그는 내 자리로 다가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야 전과장. 너 뭐하냐?”


“예? 어떤 말씀이신지…”


“보고 안 했지?
니 때문에 윗분들 앞에서 내가 바보 됐어.
니가 날 얼마나 우습게 만들었는 줄 알아?”


나는 말이 막혔다.
이미 해당 이슈는 해결 방향이 정리된 상태였고
보고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아래 사람을 혼내는 ‘행동’ 자체에 목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나를 공개적으로 패싱했다.
팀원들에게만 디저트·선물·연차 쿠폰을 돌리며
나만 철저히 배제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직급의 남자 직원과 수시로 비교하며 말했다.


“우리팀 ○○씨는 골프도 잘 치고, 일도 잘하는데…
전과장은 아직 멀었어.”


비교와 조롱.
그의 말투는 은근했고,
그 은근함이 더 무거웠다.

사직서, 그리고 마지막 모멸감

결국 나는 팀장을 찾아가 말했다.


“더는 함께 일하기 어렵겠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겠습니다.”


그는 한참을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달콤한 말투로 말했다.


“전과장, 그러지 말고…
한 달만 더 생각해봐.
이 케이크 집 주변에서 제일 맛있어.
가족이랑 드세요.”


그는 고가의 케이크 박스를 내밀었다.
천천히 밀어 넣는 그 손짓이
왠지 모르게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케이크를
퇴근길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렸다.

그리고 한 달 더 버티기로 했다.
퇴사를 위한 이직 준비를 위해.

하지만 그 한 달 동안
그의 ‘보이지 않는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 매각 숏리스트에 오른 기업명이 기사가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여기에 더 있을 이유가 없구나.”

그렇게
내 인생의 여섯 번째 이직이
조용히, 그러나 완벽하게 준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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