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 그림

번아웃과 우울증(생활글쓰기 시즌1-3)

by 박조건형



양산 오봉살롱에서 개인전을 열기 하루전날, 짝지와 나는 저녁 늦게까지 전시장에서 디피를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친구들과 백양산 등산을 하기 위해 집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새벽 5시 반에 선암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즐겁게 등산을 하고, 나혼자 카페에 남아 그림을 조금 그리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와서 짝지를 태우고 부산대로 넘어가 전시장에 쓸 A5 사이즈 투명비닐을 구매하고 A4종이에 프린트한 글귀를 코팅하고 양산 전시장으로 돌아온 것이 저녁 5시. 집에서 다시 챙겨올 것이 있어서 짝지 혼자 전시장에 남겨두고 집에 다녀온 시간이 6시. 짝지는 그동안 이 전시장에 그림원본과 글귀코팅한 것과 그림을 크게 뽑은 것을 어떻게 위치 잡을지 구상을 끝냈다. 나는 짝지 옆에서 블루택을 열심히 주물럭 주물럭 거려서 작게 잘라 짝지에게 건네고, 짝지는 네 귀퉁이에 블루택을 붙여 전시장 벽에 붙였다. 저녁을 먹직도 못하고 디피를 마친시간이 저녁 9시 반. 밤 12시까지 영업하는 고깃집을 겨우 찾아 밥을 먹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맞다. 번아웃이 올것 같은 느낌.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29년 동안 우울증과 무언가 열심히 하는 시간을 반복하며 수많은 번아웃을 겪었다. 내가 즐겨듣는 애정하는 팟캐스트 “큰 일은 여자가 해야지”에서 프리랜서의 번아웃을 자주 다루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바로 스케줄 조절에 들어갔다. 일단 프리낫프리에서 하는 프리랜서의 자기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에 대한 강의 신청한 것을 취소했다. 나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이다혜 편집장님으로부터 환불을 받았다. 두개의 독서모임에 사정을 말씀드리고 당분간 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단톡방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7월말까지 일단 속도를 낮추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나의 템포를 조절하기까지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스케줄을 조절하고 나니 번아웃이 올 것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과거 우울증 29년의 시간. 우울증으로 바닥을 치다가 겨우 수면위로 부상을 하고 나면 나는 또 일을 이리저리 벌렸다. 못 만났던 지인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모임에 참여했다. 물 들어 올때 노저어라 라는 말처럼,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때 나는 미친듯이 무언가를 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제 올지 알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마음이 온 것이 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친듯이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또 결국 피로도가 쌓이고 긴장의 끈이 팽하고 끊어져 버리면 나는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내방속으로 숨어버렸다. 29년 은 그 일들의 반복이었다.


물이 들어올때 노저어라 라는 말은 어느정도만 맞는 말이다. 자신이 저을수 있는 이상으로 물이 들어올때는 좀 쉬어야 한다. 템포를 조절해야 한다. 프리랜서에게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몰라 일들이 막 몰려올때 다 받아서 일을 하는데, 그러면 안된다. 내가 수용할수 있는 한도를 자기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 한도를 초과하면 결국 번아웃으로 향하게 된다. 벗아웃이 오면 자연스럽게 무기력하게 되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몸과 마음을 푹 쉬어줘야 회복이 되는데, 한번 심하게 지쳐버리면 그 회복도 아주 더딜 수 밖에 없다.


나는 내 삶의 가치들의 우선수위를 자주 확인하는 편이다. 내게 중요한 가치관 중의 하나는 ‘재미’이다. 재미가 있는 순으로 일을 한다. 우선순위를 자주 체크하면서 뒤로 밀려난 가치들은 가감하게 쳐낸다.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일은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사정을 말하고 모임에서 빠지겠다거나 지금은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일은 상대방을 서운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감수하고 결국 타인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정리를 해야 한다. 내게 중요한 우선순위 순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이일 저일 자꾸 끌려다디다 보면 어거지로 하는 일이 많아지고 내 삶이 재미없고 지칠 수 밖에 없다.


요즘의 나를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묻는다. 맞다. 많은 것들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거의 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나 흥미가 없는 일들은 우선순위 뒤로 밀어버리고 때론 쳐낸다. 그래서 재미와 흥미로 그 일들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시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나는 6~7시간은 푹자고 때로 피로가 안풀리거나 피곤할때는 30분에서 1시간정도 쪽잠을 잔다.


2년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로 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했다. 경주 어반스케치 페스타에 참석한 것이 내 드로잉에 있어서 큰 자극이 되었다. 주말에 양산 등산밴드에서 등산을 한번씩 가고, 짝지랑 갈맷길과 해파랑길을 걸었다. 30일드로잉 시즌제로 30일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고, 생활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에세이 글을 썼다.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해보고, 독서모임에도 종종 나가곤 했다. 그렇게 재미있어서 신나게 3개월을 달렸다. 몸이 나에게 신호를 주었고, 내게는 29년의 우울중의 경험이 있으니 그때처럼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넘어가지 않고, 바로 내가 달리는 속도를 줄였고, 덜 중요한 일들을 정리했다.


짝지도 요즘에 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도 불안했다고 한다. 과거에 내가 우울증에서 빠져나와 미친듯이 달리다가 꼬꾸라지던 모습을 많이 봐왔었기에 그때의 경험이 자꾸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서 요즘의 나는 버전업이 된 것처럼 느낀다. 그때의 나와 다름을 분명하게 느낀다. 이번에 번아웃이 올 것 같은 조짐을 느끼자마자 바로 속도를 줄이는 내 모습을 보고 짝지는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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