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야기

제주도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던 그날 1(29년 우울증경험자의 생존 에

by 박조건형



현요아 작가님의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를 읽고 있다. 첫 책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를 흥미롭게 읽었고 그 작가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제주를 찬양하고 사랑하지만, 그 곳에서 태어날때부터 살아온 사람에게 제주는 다를 것이고 제주에 대한 불만과 싦은 점을 열거한 그 책이 나는 마음에 들었었다.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갈때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설레임으로 몇일씩 즐겁게 머물다가 가는 그 여행지는 누군가에게는 생의 터전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잠깐 들렀다 떠나고 남은 이가 느끼는 허전함이나 공허감, 무기력감 같은 것은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부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광안리와 해운대가 아무런 감흥이 없고 사람이 바글바글거리는 피서철에는 절대 가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만, 외지인들에게 부산하면 해운대 광안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현요아 작가님의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브런치에서 우연히 발견한 현요아 작가님이 몇년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그 책의 작가님이라는게 무척 신기해서 다른 책은 없나 검색을 했더니 두번째로 쓰신 책이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였다.


그런데,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살 사별자의 삶을 다루었다. 여동생이 어느날 자살을 한 것이었다. 아직 앞부분을 읽는데도 눈물이 찔끔찔끔나고 몇년전의 제주에서의 내 경험이 생각났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그것도 장기간 오래 반복적으로 겪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생각한다. 29년동안 수십번의 깊은 우울증을 겪었던 나는 말해 무엇하랴. 최초의 경험은 군에서 손목을 그은 일이다. 군에 처음에 들어가 훈련소에서는 그래도 열심히 적응하고 훈련을 받았다. 자대 배치를 받아 강원도 철책 근무를 했는데 어느 정도 적응해서 순찰을 하고 있던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 졌다. 같은 일상인데도 열심히 생활하려고 애쓰던 때와 우울감이 깊을때의 마음은 너무나 다르다. 크게 힘들 것도 없는 최전방에서의 철책 근무가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고, 아마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화장실에 숨어서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 겁이 많아서 깊게 긋지는 못하고 피부만 벌어졌고, 연대로 후송되어 피부만 꼬매었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군대 생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또 길게 써봐야겠다. 어쨓든 26개월 무사제대는 했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다행히 겁이 많았다. 우울증이 심할때마다 늘 죽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길 적극성이나 충동성이 적었다. 아파트 옥상에도 올라가보고, 내가 사는 층 베란다 창문도 자주 열어보고 창틀을 짚고 올라가는 상상도 수십번 했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몸이 멀쩡한데도 우울증으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만약에 자살에 실패해 몸에 장애가 생기게 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그러니 죽고 싶지만 더 망설일수 밖에. 미국처럼 총기 구하기가 쉬웠다면 만약에 나는 방아쇠를 당길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해봤다.


제주살이 2달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책 계약을 하고 제주로 작업을 하러 갔다. 그 당시도 심한 우울증의 상태. 누군가는 제주살이 2달이라고 하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데도 많고 설레였겠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섬일 뿐이었다. 제주가는 배에 차를 싣고 갔다. 짝지랑 선실에 누워있다가 바람을 쐬러 잠시 나갔다. 시간은 어두었고, 바다는 깊고 검었다. 저기에 빠지면 흔적도 없고 찾지도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생각만 했다.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가 다시 짝지에게로 돌아갔다.


제주에는 홀로 계시는 장모님이 사신다. 장모님 댁에서 머물며 그림 작업을 하기로 했다. 장모님에게 맞춰진 그 집은 나에게 좁고 불편하고 답답했다. 지금의 나는 차를 타고 어디로든 떠날수 있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었다. 답답해도 고작 집앞 바닷가에 걸어 나가보는 것 뿐이었다. 자식 부부에게 아침을 먹여야 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계신 장모님은 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차리셨는데 나는 참 그게 번거로웠다. 우리는 집에서 아침을 그렇게 먹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토스트나 과일을 먹고 우유에 후레이크를 먹는정도로 간단히 먹었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셔서 밥을 채려주시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게 반가갑지도 않았지만, 그냥 일어나 꾸역꾸역 먹었다.


우울증인 심한 나는 그냥 누워만 있고 싶지만 좁은 장모님 집에 어디 편하게 있을곳이 없었다. 주중에 몇일은 짝지 따라 제주 투어를 했고,(나는 아무런 의욕이 없기때문에 짝지가 가자는 데로 따라 가기만 했다) 몇일은 집이나 카페에서 그림 작업을 했고 짝지는 글을 썼다. 그림 그리는 것도 즐겁지 않고 계약을 했으니 억지로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이면 장모님이 마련해준 작은 방에서 짝지랑 누워 티비를 보는데, 나는 보고 싶은게 아무것도 없고 어여 자고만 싶었다. 그런 생활을 몇주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바람을 쐬러 나간 내가 저녁때가 되어도 소식이 없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 것이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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