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던 그날 2(29년 우울증경험자의 생존 에
(1편에 이어) 발을 동동 거리며 나를 찾는 짝지를 뒤로 하고 나는 오후에 장모님 집을 나서서 바로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갔다. 부산 김해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비행기를 탔다. 전화기는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받지 않았다.
사라지기 몇일전부터 나는 몰래 양산으로 가서 내차(우리집에는 경차가 두대다. 한대는 제주도에 내려갔고 양산에는 내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에 옷가지와 짐들을 잔뜩 챙겨 사람들이 찾지 못할 어느 도시로 갈 생각을 했다. 통장에는 어느정도 잔고가 있으니 어느 도시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도시에 가서 방을 구하고 그 방에 숨어서 지낼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지내다 돈이 떨어질때까지 그렇게 숨어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 혹은 모텔들을 전전하며 여기저기로 돌아다닐까도 생각했다. 모텔에 누워 멍하니 티비나 보다가 잠이나 자고 음식은 사먹고. 그런데, 그렇게 생활하면 돈이 너무 빨리 떨어질것 같아 방을 구해서 살까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지역이 방이 쌀지도 생각해보고 어느 도시에 가서 살아야 너무 고립되지도 않고 숨어서 살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었지만, 시골쪽에 살면 더 답답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비행기는 부산 김해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고 양산에 도착해 핸드폰 대리점으로 갔다. 핸드폰 번호를 바꿀려고 했는데, 짝지가 알뜰폰으로 가입을 해놓아서 내가 번호 변경이 불가했다. 어떡하지!!!!
기존 핸드폰을 버리고 새 핸드폰을 사고 개통을 했어도 될텐데, 핸드폰 사는 건 비쌀거 같고 기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것들이 새 핸드폰에 옮겨지는지도 생각지 못했다. 그냥 번호를 바꿀려고 했는데, 그게 안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양산역 근처에서 대충 밥을 사먹고 양산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베란다 창문을 열어서 그 위에 올라가는 상상도 해보고 발을 디뎌 보기도 하고, 다시 내려오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결국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나는 사람이 없는 척하며 숨죽이고 있었다. 경찰이라고 밝히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결국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고, 잠에서 깬척 하며 전화를 받고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경찰 두명이 들어왔고, 짝지가 제주에서 경찰소에 들려 남편이 우울증이 심한 사람인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고, 위치추적을 해서 양산 경찰서에 연락을 했던 것이었다. 경찰은 짝지랑 통화를 하고 무사하다고 전하고 전화를 바꿔주었다. 짝지는 내일 비행기를 타고 양산으로 온다고 했고 혼자 자도 괜찮겠냐고 확인했다. 경찰은 몇 번이고 혼자 있어도 괜찮겠냐고 물은 다음에 철수 했다.
짝지는 그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부산 김해로 왔고, 나는 짝지를 데리러 양산지하철역에 갔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자주 가던 곱창전골집에 가서 2인분을 시켰다. 우린 대화를 하면서 서로 많이 울었다. 짝지는 죽고 싶으면 자신과 헤어지고 나서 죽으라고 했고, 자기랑 만나는 동안에는 절대 죽으면 안된다고 했다. 나는 죽지 않겠다고 정말 약속했다. 음식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펑펑 울기만 하는 두 남녀를 직원들은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궁금하다.
양산에 와서 혼자 먼 도시로 사라질 계획이었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마 이 글을 읽고나서야 어떤 생각이었는지 짝지는 알게 될 것이다. 어쨓든 우리는 양산 우리집에서 하루 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갔다.
장모님 집에 가니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감사하다고 하셨다. 두 분은 마음을 졸이며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 바다에 빠져 죽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통 알수 없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 두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너무 죄송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짝지는 내가 남은 작업을 편하게 하길 하는 마음에 장모님 집에서 짐을 챙겨서 제주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몇년전에 왔었던 적이 있는 게스트하우스 였고 내가 그때 그려드렸던 사장님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장모님 댁은 아니라 조금은 편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머무는 곳은 침대 두개가 있는 2인실이 고작이었다. 여전히 나는 무기력했고, 짝지랑 억지로 제주도를 따라다녔고, 카페에가서 억지로 그림을 그렸다. 그때의 제주에서의 사건들은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을 읽은 분들은 다들 책 중간에 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너무 놀라셨다고 했다. 그 책을 계속 안 읽다가 리뷰를 쓰려고 다시 읽었는데, 내가 사라진 부분에서 펑펑 울었다. 리뷰를 쓰면서도 펑펑 울었다.
다행히 그때의 사건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지금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다. 만약에 기존 핸드폰을 버리고, 새 핸드폰을 개통해 다른 도시로 혼자 떠나 버렸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현요아 작가님의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를 읽으니 자살사별자 라는 내용도 그렇고, 제주도 이야기도 그렇고 그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29년 우울증경험자의 생존에세이 라는 부제를 단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나는 29년을 버텨냈고, 살아남았다. 생존했다. 다행이다. 죽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