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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지가 96살 우리 할머니 처음 만나다 - 대성쌤과 함께 하는 생활글쓰기

by 박조건형

할머니 생신이 토요일이라 금요일에 쉬는 동생이랑 엄마가 먼저 할머니를 모시고 금요일에 기장에 가서 전복죽을 먹었다고 했다. 나는 일요일에 따로 할머니를 뵙기로 해서 일단 토요일 저녁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짝지랑 같이 집에 들리라는 말을 했다며 내게 전했다.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셔서 보청기를 끼긴 하지만, 그래도 전화를 못받을때가 많다. 토요일 저녁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전화를 받지 않아서 엄마에게 문자를 남겼고, 여러번 전화를 해야 받는다고 하신다. 일단 일요일 아침에 전화를 다시 해보고 할머니 집에 가라고 답문자를 주셨다.


일요일 아침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금요일 나들이를 한 것이 힘드셨던지 기운이 없다며 다음에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엄마에게 문자를 했더고 바로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도 걱정이 되니 한번 그냥 얼굴 내미는 겸 잠깐 들리고 오라고 하셨다.


짝지에게 토요일 저녁에 할머니가 집에 같이 들리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는데, 그 이후부터 전전긍긍,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참을 고민하셨다. 부담이 되면 짝지가 일정이 있어 같이 못왔다고 하면 되니 내키지 않으면 안가도 된다고 했다.


짝지랑 만난지 14년, 같이 산지 9년, 혼인신고 한지 7년이 되었다. 엄마집에 살다가 짝지랑 살기 위해 집을 나올때 엄마에게 짝지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지는 통보를 했다. 그 당시는 섭섭해 하셨지만, 지금은 늘 우리 부부를 생각해주고 응원해 주시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엄마는 짝지를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늘 궁금했던 할머니는 짝지의 존재가 궁금했지만, 할머니에게는 짝지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는 없어서(많이 놀라시고 충격 받으실까봐) 대답을 피했다. 자꾸 자신에게 묻는 할머니가 귀찮아서 였는지 동생이 할머니에게 아웃팅을 해버렸다. 전해들은 바로는 할머니가 충격을 받으셨는지 몇달동안 기운이 없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로 한번씩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 선에선 정리를 하셨는지, 참 힘들게 산 사람이니 둘이서 서로 애끼면서 잘 살아라고 종종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는 언제부턴가 한번 같이 데리고 오라는 말씀도 하셨다. 짝지는 엄마는 뵙지 않았는데, 할머니를 먼저 뵈도 되는지 늘 고민이셨다. 그런데, 이번엔 같이 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시니 정말 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연세도 많으시고.


처음 뵐 우리할머니가 자신을 반길지 짝지는 걱정이었나 보다. 일요일 오전 결국 짝지는 같이 가기로 결심하고 꽃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가는길에 길가에 있는 꽃집에서 이쁜 꽃다발도 사고 할머니 집 근처에서는 과일도 샀다.할머니 집은 외삼촌과 같이 사는 오래된 3층 맨션. 벨은 고장나 있고, 문을 두드리고 할머니를 부르는데 안에서는 움직이는 소리가 들르지만 반응이 없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거니 집안에서 핸드폰 벨 소리는 들리는데 할머니는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집 비밀번호를 물으니 번호가 길어서 기억 못하신다고 했고, 나는 조금더 큰 목소리로 할머니를 부르고 문을 두드렸다.


드뎌 문을 열고 키 작은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 주셨다. 짝지 손도 잡고 포옹도 해주셨다. 외삼촌은 주야 2교대 근무를 하느라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외삼촌은 이혼을 했는데, 저녁에 아이들이 집에 케익을 사들고 온다고 했다. 그 아이들에게 끓여줄 미역국에 넣을 고기를 사러 시장에 세명이서 함께 다녀왔다. 우리가 사온 포도를 씻어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뭐, 주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이야기 하는 우리가족사는 내가 들어도 중간중간 모르는게 있는데, 짝지가 계속 오래 들으면 힘들것 같아서 중간에 이야기를 끊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밥 먹고 가라고, 그제서야 미역국을 끓이고 밥 취사 버튼을 누르고 먹을 반찬들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고 우리는 할머니 집을 나섰다. 짝지에게 기념비적인 날이라 집에 도착했을때부터 동영상 촬영을 평소의 나와는 달리 많이 했다. 나도 짝지도 할머니랑 포옹하고 할머니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이시다. 엄마가 초등학교 교사여서 외할머니 손에 컸다. 그래서, 내게 친할머니 같은 존재다. 96세임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불편하고 귀가 좀 안들리고 기운이 없어 많이 다니지 못하시는 것 빼곤 아직 정정하신 편이다. 내 짝지가 늘 궁금하셨던 할머니 였는데, 이렇게 같이 뵐수 있어서 좋았다. 짝지도 언젠가는 뵈어야지 늘 생각해왔었는데 이렇게 뵈어 다행이다. 어제부터 오늘 방문전까지 너무나 긴장하고 있는걸 옆에서 느꼈었는데, 큰 일을 하나 잘 치룬것 같은 느낌이라 짝지에게 고생했다고 등을 쓰담쓰담 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할머닌에게 잘 도착했다고 짧게 통화하고 엄마에게도 짝지랑 잘 다녀왔다고 소식을 전했다. 언젠가 우리 엄마도 짝지를 만날 날이 있겠지. 그날까지 우리는 지금처럼 재밌게 행복하게 장난도 자주 치면서 그렇게 잘 살아가면 그만이다. 오늘 하루, 짝지도 할머니도 수고 많으 셨어요. 다들 고맙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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