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야기

막막했던 20살 청년 그 이후(29년 우울증경험자의 생존 에세이 8)

by 박조건형



중2때부터 고3까지 학교를 마치고 오면 늘 내 방에서 누워만 보내고 방학도 그렇게 보내고 주말도 그렇게 보낸 내가 그래도 학교에서는 공부를 나름했기에 중상위권의 성적은 얻어서 점수 맞춰(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고 싶은 과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동아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동아대학교는 부산에 있다)


5년을 그렇게만 보내다가 20살에 뭔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마음에 MT를 가서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던 거 같다. 목소리도 크게 하고 하는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해 참여를 했던 것이지. 그래서 개학후 과대표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참 망막했다. 과대표는 되었지만 나는 할줄 아는게 없었다. 중고교 시절 집에서(학교에서는 남들 하는 만큼 공부도 하고 어느정도 어울리긴 했다) 나 스스로 계획을 짜서 공부를 해 본 경험도 없고, 문제집을 사놓고 그걸 끝까지 풀어본 경험도 없고(다들 그렇듯이 몇장 풀다만 문제집이 대부분이다) 취미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친구랑 어울려본 경험도 없고 그랬다. 다들 무리를 지어 어울려 다니는데, 나는 어느 무리에 끼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무리에 들어가는 법도 몰라서 혼자 동떨어져 있었다. 어디에나 마찬가지로 대학에 적응 못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나는 그 무리하고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중고교때 집에서 누워 있는 것으로 도피한 것처럼, 그냥 마냥 도망치고만 싶었고, 집에 돌아오면 내방에 또 누워 있었다.


신구대면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무얼 나 스스로 해본 경험이 없으니 그게 그렇게 망막하게 느껴질줄 몰랐다. 모르면 선배들에게 물어봐서 가게들을 둘러보고 사장님과 이야기해 장소를 성외하면 될 것을, 그게 그렇게나 나에겐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겨우 한학기를 다니고 군대를 가려고 휴학을 했었나 보다. 편의점 알바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서면에 있는 노라노 디자인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중학교 시절 만화를 따라 그리던게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다들 입시철이 되니 디자인 학과 쪽으로 시험을 치는걸 보니 그때 당시 막 생기기 시작한 만화과에 나혼자 따로 시험 준비를 해서 입학을 하게 된다. 노라노 디자인 학원에는 아직 만화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커리큘럼 자체가 없어서 나혼자 미술학원에 가서 이거 알려달라고 해서 시험준비를 해 들어간 것이었다. 순천대학교와 당시 최초로 생겼던 공주전문대에 시험을 쳤고 둘다 합격해 공주전문대에 다니게 되었다.


여기도 20살 동아대학교와 사례가 비슷하다. 뭔가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에 MT가서 열심히 했고 그래서 또 과대표가 되었다. 한 달 정도는 열심히 했다. 언제 무기력과 우울증이 올지 몰라 늘 긴장하며 나를 24시간 컨트롤하며 열심히 해야지 열심해 해야지 되뇌이며 살았다. 어느날 선배집에서 잠을 같이 자고 늦잠을 잤는데, 그냥 계속 자버렸다. 그때 그 긴장의 끈이 팽 하고 끊어져버렸다. 늘 잠으로 도피하던것이 습관이 되어 그날도 학교에 가지 않았고, 다음날도 그냥 내 자취방에서 잠으로 도피하며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계속 누워 있는 것을 주인집에서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화장실가는것도 눈치를 보는 상태였다.


그렇게 한번 끈을 놓아버리니 나를 일으켜줄 사람도 없고 자주 그렇게 누워있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한심해서 사람들 만나기도 꺼려하게 되었다. 동기들도 선배들도 각자 나름 그림들을 그리고, 학교 과제도 하고 그림을 안그리는 애들도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그렇게 보내는데, 난 무얼할지도 몰랐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숨어만 살았다.


컴퓨터 그래픽 수업들이 있었는데, 컴퓨터가 내게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한 번 수업 진도를 놓치니까 따라 잡을수도 없었고, 혼자 무언가를 해보고 성취해본 경험이 없는 나는 그냥 컴퓨터는 어려운것으로 내게 남을 뿐이었다. 다른 수업들도 마찬가지. 과제를 못해내는 것도 있었고 겨우 제출하는 것도 있었다. 중학교때 만화책을 따라 그리기만 해봤지, 내가 만화를 그려보거나 무언가를 창조하고 시도해본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동기들과 선배들이 그렇게 대단해 보일수 없었고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 같았다. 내가 그나마 열심히 했던건 그냥 사진이나 자료 보고 “따라 그리기만 ” 열심히 했을뿐. 내가 콘티를 짜고 장면을 만들어내는 만화 수업은 정말 나에겐 벽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겨우 마무리하고 군대에 갔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울증으로 병가 제대하지 않고 26개월 만기 제대를 했다. 26살에 다시 1학년 2학기를 복학했다. 22살때는 혼자 자취를 해서 무기력과 우울증에 그렇게 끌려 다녔으니, 이번에는 나의 사정을 설명하고 동기들과 여럿이서 1층 집 전체를 얻어 자취를 했다. 쉼없이 몸을 움직이면 무기력이 오지 않을까봐 오토바이 치킨 배달도 병행했다. 22살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에 몇주는 열심히 했다. 그러나 결국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처럼 학교를 안가고 누워있기만 했다.동기들이 학교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가라고 하고 내방에 누워만 있었다.(동기들의 방들이 각자 따로 있었다)


학교식당에서도 일을 구해 일했는데, 그것도 결국 펑크내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만둬 버리고 학교를 가지 않은 생활을 반복했다. 도저히 동기들을 따라갈 수 없어 다시 휴학을 하게 된다. 다시 복학을 할때까지 1년동안 나는 사이코드라마도 경험해 보고 탱고도 배웠고 누드모델도 6개월정도 했었다. 그 이야긴 따로 한번 하자. 동기들과 지내던 집에서 1년 계약이 끝나고 나는 다시 나혼자 방을 구해 나갔다.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다시 복학을 했지만, 결과는 여러분이 예상했듯이 똑같다. 결국 또 휴학을 했다.


그때 동기에서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를 받아서 키웠다. 근데, 여기서 밝히는 바이지만 나는 그 고양이를 괴롭혔다. 그 작은 아이를 죽게 만들까봐 누구에게 입양을 시키지도 못하고 밖으로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은 아이가 바깥으로 나가서 잘 살아남았을지도 의문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고양이를 괴롭힌 죄책감도 컸고, 누구에게 입양을 시킬만한 에너지도 없었다.


방에만 늘 누워있었고, 가끔 바깥으로 나가면 혹여나 동기나 선배들을 길에서 부딪힐까봐 늘 눈치를 봤다. 어두울때만 밖을 나갔고, 죽고 싶은 생각에 옥상에도 자주 올라갔다. 27살을 그렇게 연명하고 자취방 계약이 끝나 엄마가 계시는 경남 양산으로 내려왔다. 양산은 공단 도시이다보니 몸을 쓰는 생산직 일을 구했고, 엄마가 받고 있던 상담선생님에게 개인상담을 시작했다. (참고로 이 공주전문대 시절에 머리를 길게 길러봤고, 딱 한번 염색을 해봤다. 그 당시 만화학과에는 빨주노초파남보 로 염색한 동기들과 선배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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