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가부장제의 비극을 다룬 <조이랜드>(스포 있음)
파키스탄 가부장제의 비극을 다룬 <조이랜드>(스포 있음)
영화는 색감이 이쁘고 사랑스러운 장면도 곳곳에 등장한다. 다만, 트랜스젠더 댄서 ‘비바’와 그의 백댄서가 공연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춤이 너무 어설퍼 보였다. 그렇게 어설퍼서 오히려 귀엽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영화의 몰입을 깨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하이더르의 아내 뭄타즈의 직장경험의 노하우를 공연에서의 정전에서 활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 판타지적으로 느껴져서 오글거렸다. 하이더르와 댄서, 그리고 비바가 그렇게 오래 준비한 공연을 올리기전에 정전이 되지만, 하이더르가 객석에 가서 관객들에게 핸드폰 불빛을 켜달라고 해서 공연이 시작되는데……많이 오글거렸다.
하이더르가 사는 집안에는 휠체어 신세인 가부장이 등장한다. 그 아래 가부장인 하이더르의 형도. 하이더르의 형수는 딸만 넷 놓았고, 뭄타즈는 메이크업 하는 직장에 다니고 하이더르가 형수의 대가족 살림을 돕는 설정이었다. 하이더르는 소심한 남성이라(대신에 돌봄을 할 줄 알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남성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형에게 대들지도 못하고, 하이더르는 비바에게 반해 백댄서로 취직을 하지만 그걸 아버지와 형에게 공개하지 못한다. 남자가 직장을 구했으니(오랜시간 백수로 지냈다) 당연히 가부장은 하이더르의 아내 뭄타즈에게 직장을 그만두길 강요한다. 뭄타즈는 자유롭고 자기일을 사랑하는 여자인데, 가정안에 갖혀 살림만 하고 집안의 온 기대를 받는 남자아이를 출산 준비하며 그 아이만 키우며 살 삶에서 절망을 느낀다. 그리하여 영화는 끔찍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스포 있음)
하이더르의 형수의 말처럼 뭄타즈를 죽인 것은 하이더르 가족 모두다. 가부장제안에서 그들도 억압받지만, 그들이 뭄타즈를 죽인 셈이다. 하이더르는 비바에게 반해 바람을 피운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트랜스젠더 라는 사실을 깊이 인지 못해서일까. 그는 비바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그들은 헤어진다. 하이더르는 깜냥도 안되면서 비바를 사랑한 셈이다. 나는 바람을 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기존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피는 바람에 대해서는 기존관계에 대한 배신으로써 크게 지지하지 않는 편이다. 하이더르도 뭄타즈를 죽이는데 일조한 셈이다. 물론 하이더르의 바람이 큰 원인은 아니다. 하이더르 집안의 숨막히는 가부장제 때문이었다. 엄마조차 남성 가장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문화, 다리가 불편해 소변 실수를 한 남성가부장의 쪽팔림 등등, 가부장제는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억압한다. 물론, 가부장제 안에서 받는 억압은 여성이 훨씬 더 크다. 장례식장면 이후에 하이더르와 뭄타즈의 결혼전 장면이 나온다. 뭄타즈도 하이더르의 순진함과 순수함, 배려하는 마음에 반해서 결혼을 결정했을 것이리라. 부모들끼리 정한 결혼전에 뭄타즈의 의사를 용기내 물으러 온 하이더르였으니. 소심한데, 그래도 용기를 낼줄 아는 하이더르였다. 뭄타즈는 어땠는가. 가부장제의 억압안에서 그래도 결혼해도 자기 일을 하는 여성을 꿈꾸며 결혼준비에서 최초로 스스로 메이크업을 하는 여성이라는 뿌듯함을 가지는 주체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성이었는데.
결말에서 하이더르가 바다에 죽으러 들어가는건지, 그냥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러 들어가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하이더르에게 온정적인 이해의 시선만을 줄 수 없는 씁슬함이 있었다.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뭄타즈의 억압과 힘듬을 바람피느라 잘 챙겨주지 못한 하이더르였기에. 그는 뭄타즈를 죽인 공범자이다. 오랫동안 그 죄책감을 가지고 오래 살아가길 바란다. 착하다는 것으로만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떼깔이 좋고 앵글과 시선과 연출이 훌륭한 영화다. 하지만, 소심하고 착한 남자 하이더르를 이해하는 쪽으로 영화를 끌고 가는 것 같아서 그 영화적 뉘앙스와 엔딩은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