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목격한 사람(고병권 산문집)
사람을 목격한 사람(고병권 산문집)
고병권 쌤의 책을 처음 읽었다. 고병권 선생님의 글에 힘이 있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깜냥을 안다는 점이다. 홍은전 선생님을 소개하며 자신은 두번째 자리에 설 깜냥이 없고 소매가 잡힐까봐 겁이 나서 세번째 네번째 서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 신뢰가 가는 것이다. 자신의 꼴과 한계를 아는 사람이라서. 말과 글의 한계를 아는 분이다.
p29 -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고“고.
: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픈 사람의 세계가 있다. 내가 책을 읽는다고 알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럴땐 그냥 듣는다. 경청한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 경청으로 인식할수 있는 것 또한 그렇게 많지는 않다. 우리와 그 사이의 간극이라도 인정하고 알자.
p40 - 철학이란, 다시 말해 철학적 활동이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걸 정당화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어디까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아닐까.
: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모르는 세계는…..그 세계를 상상해 보려면 더 다양한 세계를 들어야 한다. 찾아 읽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나 말고 밖의 세계를 상상할 힘이 없어진다. 결국은 내 안에 갖혀 그것이 다인냥 살아간다.
p197~198 - “통증의 한 가지 저주는 통증이 없는 사람에게 거짓말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자신의 행성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다. 그는 한글을 쓰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을 읽지 못한다. 그의 언어는 외계어다…….아픈 사람은 삶에 대립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더 나아가 삶의 기존 조건으로 받아들인 채로 낯선 영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내가 경험하지 못한 통증의 세계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 내가 모르는 세계를 찾아 읽게된다. 그렇게라도 읽어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것처럼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p199 - 아픈 사람은 세상의 말이 아니라 내 몸의 말을 들어야 하고, 나 자신의 고통, 나 자신의 병을 연구해야 하며, 나만의 ‘앓는 법=사는 법’을 설계해야 한다. 저자로서 아픈 사람은 자신만의 스타일과 템포를 찾아야 하며, 독자로서 아픈 사람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책을 자신의 템포로 읽어야 한다………..다시 겪으라면 차라리 안 살고 만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보다 마음에 든다.
: 29년의 우울증의 시간. 그 시간동안 많은 시간을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의 세계를 부러워 했다. 그런데, 그걸 쫓아갈 수가 없더라. 그래서, 쫓아가기를 포기했다. 우울증이 있는 나로써 살아갈 방법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하나하나 찾아갔다. 그 처절한 경험이 이제 내것이 되다보니……….너무너무 힘들고 절망적이고 무기력해서 죽고 싶은 시간이 많은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버텨내고 나의 언어를 찾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 헤매던 그 긴 시간이 앞으로의 내 생에 어마어마한 원동력임을 안다. 나는 29년의 우울증의 시간동안 다행히 죽지 않았고, 이제는 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만의 노력으로 지금의 순간이 온 것이 절대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존재가 옆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p200 - 아픈 사람들은 혼자 걸어가야 하지만 혼자만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 결국 살아내는 것은 나이지만, 그래도 나와 같이 혼자 힘으로 답을 찾아야 하는 이들이 많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주 응원하고 있ㄷ다. 그들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아프고 어설픈 어린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할수 있는 건 응원 뿐이지만, 그리고 살아내야 하는건 당신이지만, 그래도 우리 생존해 냅시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은 장애인의 삶과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그 투쟁의 처절함을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하는 기분은 알거 같다. 분노가 느껴진다. 그들의 투쟁은 그냥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에서 출발한다. 그 소박한 바램조차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이 불편해진다고 이기적이다라고 공격하고 비난한다. 과연 누가 이기적일까. 자신의 무지를 다수라는 이유로 뻔뻔하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비장애인 우리들이 이기적인게 아닐까.
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에 기다리는 마음으로 견딜수 있는 힘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럴려면, 조금은 늦거나 경쟁에 뒤쳐지거나 생활이 불편하거나 가난하게 사는 것을 우리 비장애인들은 받아들일수 있어야 한다. 결국은 이 바쁜 경쟁주의 세상이 문제인 것이다. 다들 바쁘게 치열하게 열심히 사니 조금의 불편함도 견딜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