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정영민 지음)
정영민 작가님이랑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다. 독서모임에서 한번씩 뵈었고 종종 찾던 책방의 행사나 북토크에서 뵈었던 게 전부이다. 태어날때 황달을 앓아 뇌병변 장애인이 되셨다. 걸음과 왼손 사용이 어줍고 말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보통의 삶을 살고 계신다.
나는 그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의 이야기라서 너무 좋았던 책이다. 극복스토리나 대단한 스토리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장애)에 맞게 자신의 삶을 적응시키켜 살아오셨을 뿐이다. 책도 읽고 직장에도 나가시고 헬스장에서도 20년정도 운동을 해오셨고 키보드로 글을 쓰신다. 이 책은 작가님의 두번째 책이다.
나도 어떻게 보면 특이한 삶을 살아왔다. 29년간의 우울증 경험이 있었고, 그로인해 초중고대학 친구가 없고 대학도 우울증때문에 중퇴를 하고 양산 본가에 내려와 생산직 일을 하며 개인상담을 장기간 받았었다. 10대 20대때 경험해봐야 했을것을 나는 30대부터 맨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며 내 삶을 만들어 왔다. 남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하고 화물차 운전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공저책 네권이 나왔다. 생활운동으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특이한 이력이겠지만, 내게는 내가 생존하기 위해 찾은 나만의 삶의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이 위치에 왔다. 그래서,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평범함과 내가 사는 평범함이 연결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책이 너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많이 울었다. 그냥 울컥하는 지점이 많았다. 작가님은 장애인으로 사는게 크게 불편한 점이 없는데, 비장애인들은 작가님이 많이 불편할거라고 상상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삶에 관심이 없고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평범한 삶을 사는지 듣고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당황한다. 안쓰럽게 보고 도와주려고 하는 태도가 장애인들은 불편할때가 많다. 그냥 나와 다른, 내가 잘모르는 타인을 대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장애인도 이 사회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비중이 타 소수자들보다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존재를 직접 목격하기가 참 쉽지 않다. 장애인의 존재를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호의를 가지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작가님은 장애가 있더라도 무언가를 시도해보자고 말씀하신다. 그 도전이 결국 실패나 불가능을 확인하는 일이 되더라도 무언가를 해보아야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안될꺼라 짐작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결국 더 위축되고 사회로 나아가지 못한다. 비장애인의 속도로 살수는 없겠지만, 장애를 가진 몸으로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우울증을 가졌던 내 경험과도 연결되었다. 아무것도 할수 없을것 같고 무기력하고 그래서 위축되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우울증은 금방 극복이 되는 질병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평생 우울증을 가지고 살수도 있음을 각오하는게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을 가진 몸으로 사는 법을 각자가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혼자 다해야 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내가 너무 위축되고 취약할땐 타인의 도움을 받고 도움이 필요할때 도움을 청하고 누군가가 도움울 줄땐 기끼어 도움을 받는 태도로 함께 살아가면 된다. 물론 우울증을 가장 감당해야 하는건 자신이지만.
누군가가 틱장애가 있는데 틱으로 인한 돌발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지인들이 있다면, 틱으로 인한 행동으로 인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때 함께 화를 내주는 친구가 있다면, 우울증으로 인해 위축되고 고립된 상태를 이해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돌싱이 된 친구에게 네가 행복하다면 그건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잘한 선택이라고 응원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늘 증명을 해야 존재감을 느끼는 친구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자체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떤 취약성을 가지고 살더라도 특이하지 않고 특별하지 않고 그냥 살만하다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취약성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걸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다면 그 취약성이 더이상 자신을 위축시키지 않게 되는 세상을 나는 꿈꾼다. 취약성 또한 또하나의 자신의 정체성으로 이야기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p9 - 대단한 극복기나 성공기가 아닌, 보통 사람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p25 - 몸의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 사용법을 익혀 자신만의 ‘내 몸 사용 설명서’를 완성한다.
p37 - 당신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서류와의 전쟁을 치른 적이 있는지
p143 - 나와 마주친 사람들 모두가 대체로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해낼 수 있게 기다려주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장애가 불행인지 잘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p144 - 중도 장애가 아니어서 제약받는 부분이 많지 않기에 이런 말을 쉽게 내뱉는 것일 수도, 이미 지나온 시간이기에 쉽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장애는 모두 제각각이고 사람마다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기에 타인이 지닌 장애에 대해 섣불리 군말을 덧붙이긴 어렵다. 그래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장애도 누군가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삶의 형식이라는 사실을.
p145 - 나는 보다 많은 장애인이 자신의 상황에 주눅 들어 한발 물러나 있기보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어떤 것이든 해 보기를 소망한다. 실패로 끝나거나 끝내 불가능을 확인하는 확인사살일지라도 시작해 보기를 권한다. 나는 장애가 불능의 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보다 무수한 잠재력을 지닌 말이라 믿는다. 장애는 사회에 끝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그 변화로 인해 사회는 한 걸음씩 더 나아지므로.
p152 -타자는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내 성숙과 성장을 돕는 이는 언제나 타자였다. 나는 나와 다른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한 뼘씩 자란다.
p163 -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장애학의 도전> 중에서.
p176 - 다른 이들은 더 이른 나이에 경험하고 도전하는 일을 나는 그보다 뒤에 경험했다. 늦은 거란 감각도 없었다. 할 수 있을 때하고, 다른 이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