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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 첫째날

생활글

by 박조건형

서울여행 첫째날


금요일에 김해에서 도트북 대표님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서 밥을 맛있게 얻어 먹었다. 생각지도 않게 <좋은 사람 자랑전 2> 를 제안 받아서 그날 밤에 너무너무 흥분되어 잠을 제대로 자진 못했다. 내가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쭉 적어보았다. 새벽 1시에 화장실 간다고 깼다가 다시 푹 잠들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결국 4시에 몸을 일으켰다. 울산역에서 6:55 기차였는데, 일찍 움직였다.


길은수 편집자님은 우리부부의 책 세권을 편집해주신 분이다. 나도 그녀에게 첫번째 작가였고.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갑니다>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의 편집자. 은유 작가의 <글쓰기 상담소>를 마지막으로 남편과 함께 기약없는 해외 여행을 떠나 2년동안 여행을 다니셨다고 했다. <글쓰기 상담소>를 너무 잘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데, 익숙한 이름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드렸더니 기약없는 여행중이었다.


작년에 귀국해 다시 편집자 일을 시작한지 8개월. 그런데 또 인연이라는게 신기한게, 내가 이번 서울여행에서 읽으려고 챙겨간 조승리 작가님의 두번째 에세이 책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을 길은수 편집자가 편집한게 아닌가. 우와.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다른 출판사에서 조승리 작가님 소설집이 또한 나올거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원래는 가족식사가 저번주에 잡혀 있어서 어제 느긋하게 볼 예정이었는데, 가족들 스케줄 변경으로 이번 토요일에 점심을 같이 먹는걸로 바뀌어서 아침일찍 브런치를 먹기로 했고 길게 보지는 못했다. <좋은 사람 자랑전 2> 인터뷰이로 인터뷰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마음을 전했더니 혼쾌히 수락을 해 주셨다. 두 분의 2년간 여행도 궁금하고, 편집자로써의 삶도 궁금하고, 우울증을 가진 작가를 첫번째 작가로 편집했던 이야기도 궁금하다.


은수씨는 가족식사 때문에 일찍 일어나시고, 나는 브런치 식당에 남아 천천히 책도 보고 책 리뷰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은 연희동에서 하고 있는 전지 작가님의 전시장으로 향했다. 10년전에 작가님을 알게 된 뒤로 팬으로써 오래 좋아하는 작가님이다. 9년전에 지리산 산내에서 페미니즘 아트스쿨 작가로 오셨을때 짝지랑 같이 가서 잠시 뵌적이 있는걸 제외하곤 첫 만남인 셈이다. 전시장은 멋졌다. 귀엽고, 그로테크스 하고, 사랑스럽고. 연필화로 꼼꼼하게 묘사하고, 점토로 만들고, 봉제인형을 만들고, 채집하고 수집하고 기록하는 멋진 작가님. 무언가를 묵묵하게 작업하고 기록하는 자의 아우라를 느낄수 있었다. 털털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목소리는 얼마나 낭랑하고 우아하신지. 미술관 큐레이터 목소리 같았다.


전시장을 찾는 작가들이 많을 것 같았다. 이번에 나온 <고장 난 기분>을 읽으며 작가님이 이런 고충이 있는줄 전혀 몰랐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줌회의를 할때도 자신의 순서가 오면 엄청 긴장하고 불안하시다는걸 전혀 생각도 못했다. 피디일을 오래 하시다가 더 늦기 전에 상업영화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는 감독님이 전지 작가님과 한참 이야기 하실때 은근슬쩍 끼여들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작가님은 여러권의 만화에세이집을 내셨는데, 그 만화와 에세이들을 좋아한다. 자신의 모습이나 상태를 솔직하게 노출하며 소재로 다룬다. 그런데 그 유쾌함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게 내가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다. 웃프다고 할까? 그래서 사랑스러운 작가님이다. 5년동안 탐조할동(조용히 새들의 삶을 관조하고 관찰하는 활동)을 혼자 혹은 여럿이서 같이 해오시다보니 봉제인형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 오셨고, 전시장을 그렇게 많이 채울수 있었다. 날개짓이 가능한 봉제인형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셨을까. 물론 재미있으셔서 만드셨겠지만, 남들이 크게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하는 그 작가의 철학과 셰계관이 중요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옛날에 구입한 것 같은 <채집활동>이라는 기록물 책이 있었는데, 작가님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볼품없고 초라한 것들에 애정이 있으시다. 늘 존재하지만 우리는 알아재지 못하는 그런 것들. 우리 옆의 존재들. 그런부분에서 작가님과 내가 하는 작업들이 궁극적으로 연결된 느낌이 든다. 일상속에서 무수한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은 이런 초라하고 볼품하는 나를 존재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존재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기.


일상채집작가 전지님은 밥법이를 하기 위해 오늘이 마감이라는 일러스트일을 하셔야 해서 우리는 작가님을 방해하지 않고 전시장을 나섰다. 책 편집자이기도 하고 펜그림을 그리는 낮그림 작가님도 왠지 전지작가님의 전시를 좋아할 거 같아서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전시장에서 1년 반만에 다시 뵈었다. 본인의 이름에서 가운데 글자만 빼면 전지작가님과 이름이 같다며 전지 작가님의 오랜 팬이라고 하셨다. <고장 난 기분>말고도 <선명한 거리> 만화집도 챙겨 오셔서 같이 사인을 받으셨다. 자신이 이번에 편집한 책도 전지작가님께 선물로 전해드렸다.


연희동 카페에서 낮그림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보리밥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원래 연희동에서 오래 사셨는데, 최근에 파주로 이사를 하셨다고. 친구중에 탐조활동을 하는 분이 있어 전지 작가님의 전시도 남다르게 보였다고 했다. 낮그림 작가님과 헤어지고 구로디지털단지역 숙소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대로 뻗어 8시간을 내리잤다.


하루를 120%로 즐긴 서울여행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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