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발로통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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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조건형

펠릭스 발로통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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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왼쪽에 두 사람이 있다. 아마 오른쪽 아래서 뛰어가는 아이의 보모와 그가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하다. 그 덕분에 아이가 자유롭게 뛰며 잠시 숨을 쉬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때 그 사랑이 구속이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좋은 환경에서 이 아이가 자라고 있는듯 하지만, 어디를 가든 보모의 관찰과 통제 안에 있다면 그게 과연 그 아이에게 좋을까.


물론, 그 보모와 부모의 마음은 알겠다. 이 거친 세상속에서 아이를 내놓기가 두려운 것이겠지. 그런데, 그 두려움은 자신들의 두려움의 투사는 아닐까? 그 어른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때문에 지레 짐작 아이 또한 이 거친 세상속에서 살아가며 혹시 상처는 받지 않을지 걱정하는게 아닐까. 그런데, 넘어지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더 큰 것을 놓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절망속에 빠져 허우적 거릴때 그 모습을 보고만 있는건 힘든 일일 것이다. 갓난 아기일때야 바로 바로 일으켜 주어야겠지만, 때로는 스스로 일어날때까지 멀리서 보면서 기다려 주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9년의 우울증의 시간. 나는 나만 세상에서 도태된것 같았고, 나만 루저같았다. 한심하고 평범함에 미치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평생 그 어둠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줄 알았다.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그 어둠속에서 나와 지금은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시간을 나 나름대로 버티고 살아낼려고 아등바등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안정과 행복을 얻을수 있었을까.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누워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 시간이 엄청 낭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앞으로 살아갈 30년의 엄청난 원동력의 시간이 되어준 것을 안다. 잠으로 무기력으로 도피한 그 시간이 도피이긴 했지만,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방법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림으로 돌아와 이 아이가 보모의 눈을 벗어나서 한번 발이 닿는데까지 달려 나가봤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몇시간만에 보모가 찾겠지. 그런데, 그 아이에게는 보모를 벗어난 몇시간이 처음 느껴보는 자유였을것 같기도 하다. 그 아이는 자유와 탈출을 맛보았기에 틈이 날때마다 일탈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일탈때에는 길을 잃고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도 했고, 괜히 집을 나갔나 하는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뒤 다시 새로운 일탈을 시도했다. 보모와 부모에게서 벗어남을 통해 그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대체 저 아이는 왜 저러는지 아이를 감시못한 보모의 탓이라 원망이 들었겠지만, 아이는 부모의 복사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가 어느정도 벗어나고 일탈을 해야 부모의 뜻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버리게 될까. 부모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게 될때 부모도 아이로부터 독립을 할수 있게되지 않을까. #그림한점3분응시15분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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