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야기
나의 F코드 이야기(이하늬 지음)
정신과 질병은 F코드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F41.2 는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F32는 우울병 에피소드. F42는 강박장애 진단. 최근애 받은 진단 F313은 양극성 정동장애, 주요 우울 삽화라고 한다. 이 진단명은 저자가 여러 병원에서 받았던 이름들이다. 저자는 기자이기도 하다. 대안학교를 다녔었고 특별한 가정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덜컥 우울증에 걸려버렸다고 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왜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는지 궁금해진다. 기자출신답게 여러 전문가들에게 인터뷰를 하며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우울증은 쉽게 사라지는 병이 아니다. 우울증을 가지고 어떻게 살지를 마음 먹어야 한다. 그럴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하고 그에 맞게 살 방법을 찾고 강구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프지 않으면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자신이 뭘 할때 행복하고 뭘 할때 힘들어하고 어떻게 살고 싶어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평상시에는 잘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29년간의 긴 우울증 기간을 통해 얻은건 나에 대한 관심이 다른 누구보다 많아졌고 나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게 왜 이런 우울증이 주어졌는지, 내가 살아온 과정은 어떻게 우울증과 연관이 되어 있는지, 우울증 관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생각하다보니 나를 구체적으로 잘 알게 되었고, 무엇이 내게 좋은지 무엇이 내게 별로인지 잘 알아서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 되었고 나답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우울증과 관련된 책들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운동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운동을 하라는 건 아니다. 저자에겐 헬스장 피티가 맞지 않았다. 등산은 올라가다가 힘들때 그만둘 수 없고 다시 내려오기까지 해야해서 맞지 않았다. 여러 운동을 전전하다가 요가가 자신과 맞았다고 했다. 동작을 따라하다가 많이 힘들면 그자리에서 누워 휴식을 취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자신에게 맞는 강도로 하면 된다. 물론 우울증이 심할때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도 힘들기에 동네슈퍼에 나가서 물건 사오기, 샤워하기도 큰 과제가 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나는 왜 사는가?, 인생의 의미가 뭘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질문에 답이 없다. 나도 징그럽도록 질문해 보았지만, 답은 내려지지 않는 질문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사는 것이다. 죽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고 살아있으니 살아가는 것 뿐이다. ”사는 이유가 뭘까? 왜 사는 걸까?“라는 질문보다는 기왕 사는거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라고 질문을 바꾸는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남들은 겪지 않는 이 우울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생각해보는게 좋다. 우울증 덕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큰 능력이 생겼고, 아픈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페미니즘을 오래 공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앞 질문에 이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로 이어지면 좋다. 그렇다고 타인을 의식하라는 말이 아니라 우울증이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내야할지 그림이 그려진다.
나는 ‘그럼에도불구하고’ 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살아가는 건 원래 힘들다고 생각하고,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힘든 삶, 아픈 삶을 모른체 좋은 것만 보자는 긍정적 자기계발이 아니라 나의 아픔을 직시하고 충분히 들여다 본 다음에 내 위치나 현실을 잘 파악하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내 우울증을 감당하면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살 방법을 찾으면 된다.
p261 -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천 번은 던졌지만 그럴듯한 답을 찾은 적은 없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