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야기
외할머니(98세)
집에서 약속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부산 사직동 외삼촌 집(삼촌집에서 지내신다. 삼촌은 이혼을 하셨고 자녀가 두명이다)에 바퀴벌레 약을 쳐서 오늘 하루 엄마집에 묶으러 왔다고 했다. 엄마(77세)도 외할머니(98세)에 대한 분노나 감정들이 많다보니 최근에는 할머니가 집에 오면 방에 들어 앉아 앓아 눕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소리가 잘 안들리시고, 최근 1~2년 사이에게 혼잣말을 많이 하고 혼자서 유령들을 쳐다보고 욕을 하고 대화를 자주 한다고 동생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혼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혼잣말하고 욕을 해서 경찰소에서 연락이 와 데리고 온 적도 여러번 있다 했다. 환청이나 환시와 관련된 약을 할머니가 먹었으면 하는데, 약은 또 안드실려고 하니 엄마는 속상하고 화가 나고 그러신것 같다. 할머니가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편이면 노인센터에서 어울려 시간을 보내면 되는데 그런데 가서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걸 너무 싫어하시고, 텃밭이라도 있으면 덜 심심하실텐데 외삼촌 집이 빌라라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자주 혼자 돌아다니신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이 바쁘기전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할머니랑 밖에 나가서 밥을 먹거나 돌아다녔다고 한다.
집에 있기 답답해 할머니랑 둘이서 나가서 먹을려고 하니 좀 그래서, 오빠인 나에게 연락했다고 했다. 나도 할머니가 혼잣말을 하고 큰소리로 욕을 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론 보지 않았으니 뵌지가 1년은 넘은 것 같아 나간다고 했다. 짝지에게는 혹시 부담이 될수 있으니 안가도 된다고 했고 그래서 나혼자 엄마집에 갔다.
엄마 동생앞으로 사인을 한 <좋은 사람 자랑전> 한권과 지인에게 선물준다고 하셔서 두권을 더 챙겨 갔다. 할머니는 일상 생활은 잘 하실정도로 총명한 편 이시다. 오래만에 엄마집에 와서 길을 헤깔릴만도 한데 부산 사직동에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엄마집까지 찾아오셨다. 처음에는 6층에서 내려서 딩동딩동 했는데, 답이 없어서 동생에게 전화해 16층으로 찾아오셨다 했다.
식당을 가도 할머니 입에 맛는 가게를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전에 간 보리밥 집이 먹을만하셨다고 그리고 갔다. 동생차에 할머니랑 뒤에 타고 가는데, 할머니가 혼잣말을 하시는 걸 처음 봤다. 식당에서는 다행히 식사를 잘 했고, 또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답답해 하셔서 황산공원에 들러 보기로 했는데 조명이 너무 어두워 걷기가 그랬다. 카페를 가도 할머니가 드실게 없으니 어디가지 고민하다가 동생이 우리집에 잠시 들리면 안되냐고 해서 일단 짝지에게 전화해서 허락을 구했다. 동생도 우리집은 처음. 할머니는 3년전에 사직동에서 짝지를 만난 적이 있지만 우리집은 처음이시다.
짝지는 동생과 할머니를 허리를 반으로 접어 자세를 낮춰 반겨 맞아 주었고, 동생도 갑자기 오게 되서 미안하다고 말해 주어 두 사람에게 고마웠다. 할머니는 믹스 커피를 타서 반만 마셨다. 할머니와는 소리가 잘 안들리시니 대화가 잘 안된다. 간단한 단어나 의사 표시 정도만 알아 들으시고 나머지는 외국어 들리는 듯 한 모양이다. 짝지랑 동생이랑 대화하고 나는 옆에 앉아 있었는데 할머니가 머리를 돌려 유령에게 이런저런 욕을 쏟아내셨다. 이번에 처음 봤다. 우리는 또 우리끼리 대화하고, 어쩔땐 나도 할머니 따라 그 유령에게 같이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할머니 손을 잡고 짝지방도 구경시켜드리고, 내방도 구경시켜드렸다.
우리 남매는 부모로부터도 할머니(할머니가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것만 해 주셨다)로부터도 제대로된 애착경험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두렵고 불안하고 어려워서 자주 넘어지고 나는 우울증으로 무기력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의 나는 동생에게 의지가 되는 오빠가 아니었다. 나는 내 방에 누워만 있었으니까. 동생이랑 우리의 어린시절과 상담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동생의 연애가 불안형 유형으로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집착을 하다보니 관계가 끊어졌다는 걸 대화로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다행히 엄마랑 동생은 오랜 전투 끝에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동생이 엄마에게 할머니에 대한 감정과 남편에 대한 감정을 주제로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지만, 그걸 감당할 에너지가 되지 않아서 회피하시는 것 같다. 엄마 안에는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분노도 많을 것이다. 할머니는 일단 대화가 되지 않으니 할머니 안에 쌓인 화를 풀어낼수는 없으니 욕을 하고 혼잣말을 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부분이고.
그리고, 아버지가 혹시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오면 나는 무연고 처리를 해달라고 말하겠다는 마음을 평소 먹고 있었는데 동생에게도 그러라고 말을 했다. 우리 남매에게 아무런 추억이나 경험이 없는 아버지의 장례를 우리가 치르게 되면 장례비만 갑자기 1500원에서 2000만원 들테니깐. 애정 없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싶지 않고 무연고 장례를 해달라고 말할 생각이다.
할머니 장례에 대한 이야기, 상조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우리 남매가 서로에 대해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한것은 생애 처음이다. 할머니와 동생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문자로 전했다.
나: 니가 할머니하고 엄마 챙기느라 고생이 많다. 47살 49살이 되어서라도 이렇게 깊은 이야기 할 수 있는게 다행인거 같고, 네가 믿는 하느님께 감사하네. 니도 조금 성장했고 나도 성장해서 그런가 보다. 니가 애썼고, 나도 애썼잖아. 애착 경험이 전혀 없는 너랑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 만으로도 대견하다.^^ 잘 들어가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할머니 양산오면 내게 연락을 해봐라. 집에 있거나 하면 함께 뵙구로. 약속 있을 때가 많아서 자주는 못그러겠지만.
동생: 어 그래 우리한테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오다니 하나님께 감사하다~!!
할렐루야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오빠야도 나도 진짜 고생 많았다
지금까지 써바이벌했으니
이제 남은 인생은 잘 살아보자
같이 가족 얘기 할 수 있으니 좋고 힘이 많이 되네~^^
짝지한테도 고맙네
집에 잘 왔다
인자 안우울하게 잘 헤쳐나가 보자
고맙디~
동생이 믿는 하느님께 감사한 밤이다. 할렐루야다. 살아보니 이런 날이 오는 구나. 나는 동생과는 절대 여행은 가지 않을거야 말하고 다녔는데, 동생과 이런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되다니………눈물나게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