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부너미
[4주] “속 깊은 대화 없는 우리 가족, 이대로 괜찮을까”를 읽고
우리 원가족도 대화가 많은 편도 아니고 교류가 많은 편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랑은 연락을 하지 않는다.(전화나 문자에 답을 하지 않는다) 짝지랑은 친밀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장난도 많이 치지만, 원가족과는 그렇지는 않다. 특히 여동생과는 더욱더 친하지는 않은 편이다.
가정사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나는 개인상담을 통해서 답을 찾았고, 동생은 하느님을 통해 답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동생은 자신의 어두움을 직면하고 들여다보는 작업을 충분히 하지는 못한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을때마다 하느님에게 기도만 한다고 될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동생과 라포형성이 되어 있지 않다보니 괜한 오지랖같은 간섭인것 같아 말하기는 조심스러울 뿐이다.
현재 14명과 함께 ‘그림한점3분응시15분글쓰기’ 단통방을 운영중이다. (원래 처음 시작은 21명이었는데, 매주 올리지 못하는 분은 함께하기 어렵다는 문자를 드리다보니 현재 일곱명이 나가셨다) 이 15분글쓰기가 어른을 위한 “내면탐구 글쓰기 놀이”라고 생각해서 동생에게도 그런측면에서 권유를 했었는데, 모임 전에 샘플로 제시한 그림이 본인에게는 힘든 그림이었나 보다. 원경을 보고 앉아 있는 사람의 뒷모습(검은색)을 나는 평화롭게 봤는데, 동생은 그 시커먼 사람이 무섭다고 했다. 선명하지 않고 모호한 것은 싫다고 말하는 동생이다. 그 싫음이 무엇인지 모호한 것이 왜 두려운지 동생이 탐구를 했으면 하는데, 그걸 권하기가 그리 친밀한 관계는 아니라서 조심스럽다. 그래서, 15분글쓰기 샘플 그림 글 하나랑 첫번째 글을 올리고 나서 본인은 이것저것 바빠 여유가 없다며 나가겠다고 했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버지가 대순진리회에 빠져 다녔던 가정사 속에서 우리 세명의 가족(엄마, 나, 여동생)은 각자 힘들었다. 나의 우울증은 중2때부터 시작이 되어서 동생에게 좋은 오빠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은 참 미안하다. 그 당시 나는 학교 가는 것 외에는 내방에서 누워만 있었다. 동생은 아직도 그 때의 자장안에 있는 것 같다.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상담도 오래 해봤다고는 하지만, 동생이 개인상담을 좀 깊게 길게 하면서 자신 스스로 자기문제를 직면하는 힘을 길렀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걸 말하기는 쉽지는 않다. 동생과 아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욕망이 큰 것도 아니고, 우리 원가족과의 이 정도 거리감에 나는 그냥 만족한다.
동생 방에 전등불이 어둡다고 해서 SOS를 청하길래 엄마 집(엄마랑 동생 둘이산다)에 들러 전등을 풀고 전등을 들고 철물점에 같이 갔다. 철물점에서는 그 제품을 주문하기 어렵다고 하길래 차에서 제품을 검색해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다음에 짝지 생일날(2월달) 가족식사를 한뒤에 집에 들러 내가 갈아주기로 했다. 혼자 할수도 있는 거지만(어떻게 교체를 하는건지 천천히 쉽게 설명은 해 줬다), 전등이 크기 때문에 혼자하긴 불편하고 어렵긴 해서 그때 같이 갈기로 했다. 차에서 둘이 있는데 참 나눌 이야기가 없어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동생은 미혼인데, 교회에 두살 많은 좋아하는 오빠가 생겼다는 이야길 했다. 나랑 동갑인 77이란다. 그 호감이 좋은 연애로 이어지길 바란다.
하지쌤의 글을 읽으며 각 가족간의 스토리는 다르고, 가족간에 꼭 화목한 모습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정사가 힘들었기에 종종 내가 정상적인 화목한 가족에서 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예전에는 종종 해봤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나올 수 없을것 같다. 지금의 나를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는데, 이제는 우리의 가정이 행복했다면 하는 아쉬움적인 상상을 하진 않는다. 어떤 부부들은 대화가 적을수도 있다. 드라마나 예능에서 경상도 사람은 무뚝뚝하다고 자꾸 이야기하는게 짜증난다.(나도 경상도 사람인데 무뚝뚝하지 않고 잘 표현한다. 남성들이 경상도 사람이라는 핑계 좀 덜 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대화나 표현이 익숙하지 않고 서툴수 있다. 중요한건 대화여부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있느냐의 여부지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해서 꼭 소통을 잘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하지쌤이 대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자기 가족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서 그게 좋았다. 부부간에 공통적인 취미나 관심사가 있으면 좋은데 한쪽이 그걸 같이 할 의지가 없다면 구태여 궂이 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아이들이 많이 커서 부모 역할이 줄어들때 부부는 왜 한집에서 같이 살아야하는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정여랑의 소설 <5년후> 처럼, 5년마다 혹은 10년마다 부부가 각각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며 관계를 리셋해 보는 태도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