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 “누구나 엄마 성을 쓸 수 있을까”를 읽고

30주 부너미

by 박조건형

[6주] “누구나 엄마 성을 쓸 수 있을까”를 읽고


홍이쌤은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를 일이지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자신의 성을 물려주고 싶어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남편은 “성씨, 그게 뭐라고!” 라며 혼쾌히 동의를 했다.


두 번의 유산을 겪고 그냥 아이 없이 둘이서 재미있게 살자고 체념할 때쯤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 15주 차에 초음파로 아들임음 확인하고 딸이 아니라 잠시 서운해하던 남편이 대뜸 아이에게 자기 성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자신이 ‘혼쾌히 동의’했던게 생각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출산 날까지 많이 싸우셨다고 한다.


홍이쌤의 글을 읽으니 2019년도에 나왔던 배윤민정 작가님의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라는 책이 생각나서 책장에 가서 책을 다시 꺼냈다. 부제는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이다. 왜 시가쪽 호칭은 아버님, 어머님, 아주버님(남편의 형), 형님(형의 아내 혹은 남편의 누나), 도련님(결혼후에는 서방님), 아가씨 라는 단어를 쓰고, 왜 친가쪽 호칭은 형수씨(형의 아내), 제수씨(동생의 아내),처형(아내의 언니), 처제(아내의 여동생), 처남(아냉의 오빠나 남동생)으로 다르게 부를까? 그래서 가족간의 호칭을 평등하게 불러보자는 제안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남편과 남편의 아내(저자와 동갑)는 자신들을 왜 윗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 ‘호칭 그게 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왜 ‘그깟 호칭’이라고 말하면서 쉽게 바꿔 부르지 못해 모두들 안달이고 화를 내고 불편해 하는 걸까. 그깟 호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윤민정 작가님은 이 투쟁을 1년간 지속한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싸움은 피곤하고 쉽지 않다. 평온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민정 작가님은 가족 호칭 문제를 제기한 후에 다양한 흔들림을 경험했다. 가족과의 격한 갈등을 겪으면 그만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자신의 마음속 흔들림에 지속적으로 답해야 했다. 왜 평온한 가정에 풍파를 일으키느냐는 다른 가족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에도 지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답해야 했다. 지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드러낸 민정 작가님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민정 작가님의 남편은 처음에 아내의 의견에 머리로는 동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이해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민정 작가님은 호칭 문제가 불편하고 평등한 가족구성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그 주제를 가지고 오래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남편의 경우 그 문제는 자신에게서 출발한 질문이 아니고 그 질문이 왜 중요한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내가 호칭 문제를 제기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깊게 생각해봤어야 했다. 자기 문제가 아니면 ‘그깟 호칭이 뭐라고’ 라고 말하기 쉽다.


민정 작가님의 남편의 형님과 그 아내의 경우 민정작가님이 당돌하고 무례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형님의 아내는 아무리 민정작가님과 동갑이라도 자신이 먼저 이 집안에 입성했으니 윗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의 형님도 남편보다 자신이 윗사람이니 동생의 아내도 아랫사람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냥 호칭만 윗사람으로 불러주면 될 것을 그걸 못해 문제제기를 했으니 저항감이 컸을 것이다. 1년이 지나서도 동생 부부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호칭문제는 더이상 언급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우리 회사안에서 나만 트러블 메이커, 유난떠는 사람, 튀어나옷 못 취급을 받는다. 내가 그들보다 잘 욱하는 성질이어서가 아니고 참지 못하는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윗사람들에게 여러가지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했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언성도 높여보고 따져도 보고 사과도 하고 여러번 했었다. 그들에게는 ‘직장생활은 원래 그래,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고 참는게 직장생활이야’ 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고 관계의 경험을 쌓아온 사람인데 자신들이 나이가 나보다 더 많으니 더 노련한 것처럼 이야기 할때 화가 났다. 몇 년 더 살았으니 자신들의 처신이 더 지혜로운 것이고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 취급받는게 불쾌했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나의 입장에서는 당신들의 행동들이 불합리하고 답답하다고 느낄때가 종종 있는데, 자신들만 나를 참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의가 없었다.(나도 당신들을 참고 있는 부분 많다고!!) 6년동안 일하며 전과장, 권주임, 김대리, 권소장, 김부장과 정말 다양하게 많이도 싸웠다. 이방법 저방법 다 해봤고(사장님과의 면담도 두번이나 했다) 더 해볼게 없어서 요즘은 그냥 조용히 지내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나를 ‘일은 좀 하는데, 성깔이 있는 놈’으로 인식하게 한 것도 성과중의 성과이긴 하다. 전과장이 한때는 하루에 대여섯통씩 전화를 내게 걸고 길게 통화를 했는데, 나는 그 통화가 정말 싫었다. 감정 쓰레기통 노릇하기도 싫었고. 지금은 용건 있을때만 하고 용건이 끝나면 바로 끝는다.


영업하는 김부장이 우리 회사의 영업의 60~70%를 하는 것 같다. 나머지는 사장님의 영업이고. 오다를 넣고 발주를 넣는데 있어서 현장에 대한 배려나 고려는 없다. 오늘도 2시 30분에 단톡방에 넣어서 1시간 거리의 거래처에 납품을 하라고 오다를 넣었다.(퇴근은 5시이다) 한가할때는 그렇다고 쳐도 퇴근하기 전에 트럭 네대에 배차를 다끝내고 짐을 실어 놓았는데 다음날 오전 배송, 급배송 오다를 넣어버린다. 그러면 배차를 다 새로 짜야하고 실었던 짐을 내리고 다시 새 짐을 실어야 한다. 그래서 5시 넘어 퇴근할때도 있다. 김부장 오다 때문에 현장 사람 여섯명이 짜증이 나는 상황인데 수시로 이런다. 소장님은 사장님의 신뢰도 받고 10년 넘게 근속한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면 현장을 대표해서 김부장과 이야기를 하던지 싸우던지 해서 급작스런 발주를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협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장은 소심해서 그런 그릇도 못되고, 제대로 김부장에게 현장 대표로서 불만을 제기한 적이 없다. 얼마나 답답하면 내가 회사 단톡방에 한번 모든 직원이 모여 김부장 배차 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고 문자를 올린 적이 있다. 아무런 댓글도 없었고 담날 출근해서 아침 회의시간에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접었던 경험도 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김부장이 별로여도 영업을 많이 하니 필요할 것이다. 사장님도 신차장도 소장님도 아무 댓거리를 안하니 나혼자 뭘 할수가 없다. 나는 김부장에게 찍혀 있다. 어느 날은 내가 거래처에서 믹스커피 끊일 물 찾는다고 냉장고를 연걸 가지고 몇달이 지나서 신차장에게 “박주임은 거래처에서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맘대로 꺼내 먹는다”는 이야기를 내게 사실확인도 없이 이야기를 해서 내가 전해 들은적이 있다. 정말 화가 나서 김부장에게 전화를 해서 따져 물었다. 김부장에게 너무 찍혀 있는 것 같아서 회식자리에서 사과를 한 적도 있고 잘해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다. 거래처에서 인사를 해도 김부장이 생깐적도 많아 지금은 봐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먼저 인사를 한다면 고개만 살짝 까닥할 생각이다) 거래처에 납품하러 가서 마주쳤으면 인사라도 건넬만한데 지 볼일보고 나면 쌩하니 바로 가버린다. 현장에 김주임님은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소장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따질 일들을 항상 김주임(김주임님이 현장일을 다 알지는 못한다)에게 전화하고 물어보고 따진다. 현장과 사무실이 떨어져 있어서 한번씩 김부장이 샘플받으러 현장에 오는데 현장에 들어오지 않고 김주임에게 전화해서 가지고 나오게 만든다. 지가 영업하는 건 다 우리가 납품하는데 현장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다. 김부장은 회피형 인간이라 맞대거리하면 깨개갱 할 스타일 같은데, 아무도 김부장의 안하무인 오다 발주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내가 소장이라면 몇번이고 싸우고 한판 떴을텐데…….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건 다 해봤기에 요즘은 그냥 조용히 지낼뿐이다.


나도 뭔가 불만을 이야기 하거나 화나 섭섭함을 표현하며 문제제기를 하는게 좋지만은 않다. 갈등관계가 되거나 대화중 화가 나서 목소리가 높아지면 나도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떤다. 직장생활이고 내 생계(나와 짝지의 생활을 책임지는)라 내가 인정할 부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고 수그리는 편이긴 하지만 이 회사에서만 내가 유난 떠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속상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화하고 문제제기를 해야할지 늘 고민이 되긴 하다.


누구에겐 사소한 일이 누구에겐 사소한 일이 아닐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문제제기를 했을때 그 사람은 마음을 먹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런데 내 태도가 듣지 않는 태도라면, 변명하고 부인하는 태도라면 그 사람은 내게 불만이 있어도 다음에는 내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꼰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불편한 부분을 마음 내서 이야기 해주면 잘 듣고 그 사람이 말하는 부분의 핵심이 뭔지 잘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그 부분을 짚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마음도 풀리고, 나도 내 못난 모습을 발견해 미안하고 겸연쩍고 속상하긴 하지만 그렇게 나도 나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음에 나에게 불편함이 또 있거나 할말이 있으면 그때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된다.


이제 곧 구정 명절이다. 부너미 선생님들이 시가에 들러 마딱뜨릴 충돌이나 갈등이나 답답함 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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