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께 드리는 헌정글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해주셨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말수가 적어서, 뭔가 얘기하려고만 하면 눈물부터 왈칵 나는 것이 너무 싫고 부끄러워서, 말보다는 글을 선택해 마음을 표현했던 것 같다.
유난히 예민했던 건지, 나도 남도 말을 무심결에 뱉어놓고 사과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고- 신중을 기해서 글로 쓰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지우고, 다듬고, 하는 과정이 더 좋았다. 아니, 좋다기보단 그 편이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적절히 숨기고 적절히 포장해서 예쁘게 골라 전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영국에 사는 언니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가족들은 “너도 시작해봐!”라고 말했지만-
바쁘다는 건 핑계이고 사실 내가 그렇게 글재주가 좋지는 않음이 들킬까봐 시작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래저래 지쳐있던 나는 생일이 다가오자 엄마아빠에게 “성대한 생일파티를 할거야! 아홉수 생일이니까! 아주 성대하게! 다들 준비해!!” 라는 밑도 끝도 근거도 없는 소리를 당차게 뱉었다.ㅋ 근데 가족 중 그 누구도 나에게 “뭐래”가 아니라 “그래!! 어떻게 성대하게 할까~?”라는 말로 당황시켰고, 조금 희한하게 감동받았다..
그리하여- 아홉수 생일을 맞이해서, 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감사의 말들이 매일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데, 이 글자들을 정리하여 이 나만의 공간에 소심하게 헌정글로 남겨보기로 용기를 냈다.
1994년 여름은 대한민국 기준으로 20세기 최악의 폭염이자 전설적인 가뭄이었다고 한다.
그 해 한여름인 6월 말, 여리여리한 체구의 27살 여자에게서 나는 4.2kg 56cm 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태어났다. 하하..^^ 어지간히 나오기 싫었는지, 기억은 날 리 없지만 분명히 포근하고 편안했을 엄마 뱃속에서 밍기적거리며 몸만 불리고 있었나 보다..
그 거대한 아이는 현재 키 170cm까지 컸으면서도 핸드폰 하나 들기도, 2kg도 안 될 가방을 메기도, 모두 성가셔하며 내 몸 하나 겨우 건사 중이다.
엄마가 덥고 무겁고 힘든 시간을 견디며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사실 내가 나의 아이를 낳을 때까지 온전히 가득, 온몸으로 알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울엄마는 진.짜. 예쁘다.) 반짝거리는 악세사리도, 옷도 좋아하는 엄마가 그 빛나는 27세에-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잊은 채 모두 아이의 예쁨과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애썼음이 어린 시절 사진 몇 개만 봐도 티가 난다.
조금씩 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다.
퇴근 후 7시가 되기 전 항상 바로 집에 오셔서는 자전거와 인라인도 타고 배드민턴도 해주며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가 계시고, 아빠가 오시기 전까지 눈높이, 윤선생, 구몬 같은 학습지를 다 끝내고 이따 함께 신나게 놀자고 달래주는 따뜻한 엄마가 계신 것이, 온 식구가 함께 매일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 앞에서 하루를 공유하고 힘들진 않았는지 마음을 물어보고 공감해주며 마무리한다는 것이, 그래서 조금 구겨진 못나고 아픈 마음은 털어버리고 건강한 마음으로 웃으며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6년 차 직장을 다니는 나는, 주말에 하루조차 종일 밖에서 보내는 것이 너무나도 피곤하다.. 엄마아빠는 어떻게 평일 새벽에 시장을 데려가고, 금요일 밤 어마 무시한 스키 장비와 세 딸을 챙겨 밤새 운전하고 가서 야간스키를 타고, 저 멀리 물놀이도 데려가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을까..? (지금 쓰면서도 너무 신기)
그리고 현재까지도 우리는 매년 대가족(7명)이 함께 휴가를 맞춰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것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커가는 나이대에 따라 엄마아빠와 함께 경험해 볼 새로운 것들(요즘은 골프?)을 발견하고 해 나가는 것이 너무 재밌다. 그냥 우리는 모두 서로가 가장 친밀한 친구다.
요즘 우리 젊은 사람들은 알아서 너무나 잘, 맛있고 재밌고 좋은 곳을 찾아서 다닌다. 엄마아빠가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해주셨듯- 이제는 내가 부모님께 여러 신나고 좋은 것들을 경험시켜드리고 싶다. 함께 해야 할 것도, 먹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아웃풋 훌륭한 든든하고 멋진 둘째 딸이 될 거다!
사실 나는 노력과 대가 없이 이런 마음의 여유를, 풍족함을, 얻었다. 한 번도 결핍된 적이 없다. 이런 나의 단단한 내면이 자존감의 뿌리가 되어 어디서든 날 당당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그렇듯, 사회에서 살아가며 이유 없이 날 미워하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날 절망으로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거나 내면을 깎아낼 수는 없었다. 힘들고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나고 회복할 힘을 꺾지는 못했다.
‘기댈 구석’이 있다는 것은 지금 스물아홉이 되어서까지도,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날 지탱하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작용한다. 이게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축복인지를 매일 실감한다.
그래서 나도 부모님의 바람대로- 일상과 일터에서 받은 사랑을 나누고 힘을 주는, 누군가에게는 기댈 구석이 되길 노력하고 소망한다.
그래서 나의 이 첫 글의 지배적인 주제와 마지막 말은 결국, “엄마 아빠 온 맘 다해 사랑해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는 조금 식상해보이지만 전부인 것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이제 슬슬 나의 베스트 프랜드들과의 성대한 생일파티를 즐기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