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면에서 놀라운 곳
공항에서 어디 가냐 그래서 폴란드, 하니까 티켓을 보고 '아, 브로츠와프?' 하는 거다. 일단 그 발음에서 너무 놀라버렸다. 이 스펠링 Wrocław 이 브로츠와프로 발음이 될 거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려서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passport control이 너무 바로 눈앞에 있어서 좀 놀랐다. EES (Entry/Exit System)가 벌써 시작되었는지 여권 검사를 하면서 얼굴 사진을 찍어서 또 좀 놀랐다.
호텔이 보르츠와프 중앙역 Wrocław Główny 근처여서 공항에서 버스를 타니 한 40분 즈음 걸렸다. 버스표는 폴란드 화폐로 4.60 즈워티 złoty (영국돈 0.9 GBP, 한화로 1,800원)여서 "어머, 이렇게 싸다니!" 하고 깜짝 놀랐다. 폴란드 물가는 한국 물가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들어왔는데 방이 생각보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많이 크고 좋아서 좀 놀랐다. 다른 유럽 나라에서 그냥 보통의 더블룸 가격이었는데 여기 물가가 워낙 싸서 아마 일반 더블룸들보다 두 배 이상 더 넓고 좋은 방인 거 같다. 호텔방 창에서 밖을 보면 기차역과 광장이 보인다. 나쁘지 않은 뷰다.
비행기 타기 전에 공항에서 브런치를 먹고 아무것도 안 먹어서 아주 배가 고픈 상태로 호텔 근처 식당에 갔다. 너무 낯선 곳에 가면 왠지 익숙한 음식이 먹고 싶어 지는 그런 본능이 있어서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물가가 너무 싸고 배도 너무 고파서 좀 욕심을 내버렸다. 소고기 쌀국수 소자를 스타터로 시키고 메인으로 매운 철판 돼지고기 볶음을 시켰다. 맥주 있냐고 물으니까 무슨 사이즈냐고 묻지 않고 아주 큰 잔에 맥주를 콸콸 따라주는 호쾌함에 좀 놀랐다.
쌀국수에 소고기가 미디엄 레어로 붉은빛을 띠고 나와서 아니, 이런 현지의 요리 기법을 쓰다니, 진짜 베트남 분이 요리를 한 건가, 싶었다. 고기가 진짜 부드럽고 양이 많고 국물도 진하고 맛있어서 분명 내가 먹어본 쌀국수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 같다.
쌀국수를 막 다 먹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데 엄청난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이 매울 정도의 연기를 내뿜는 철판 돼지고기 볶음이 나왔다. 밥이랑 양배추 절임 샐러드도 같이 나왔다. 진짜 베트남 분처럼 보이는 남자 요리사분이 서빙을 해주셨다. 막 먹으려는데 다른 손님이 내가 시킨 거 뭐냐고 물어봐서 알려줬다. 내 뒤로 줄줄이 같은 걸 시키는 것 같았다.
양이 너무 많으니까 먹다가 남겨야지 했는데 맛있어서 밥만 조금 남기고 거의 다 먹어버렸다. 배가 진짜 불렀는데 맛있는 거 먹고 배가 부르니까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것이 바로 기분 좋게 배가 부른 것이지, 하고 좀 뿌듯했다.
진짜 많이 맛있게 먹고 마셨는데 전체 61 즈워티 (12.5파운드, 2만 4천 원) 밖에 안 나와서 너무 신나고 좋았다. 과식하기 참 좋은 나라다. 갑자기 포르투갈 파로 Faro 갔을 때 첫 식당 가서 받은 비슷한 감동이 밀려온다. 내일도 즐겁게 과식할 테다.
물 좀 사려고 근처 슈퍼마켓을 찾았는데 대체 입구가 어딘지 모르겠어서 빌딩을 한 바퀴 돌고서 겨우 찾았다. 슈퍼 입구를 너무 시크하게 해 놓은 거 아닌가 싶다.
슈퍼가 또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건물 안에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 앞에까지 가서 보지 않는 이상 이게 슈퍼인지 뭔지 알기 진짜 쉽지 않은 거 같다.
슈퍼는 뭐 슈퍼다. 어딜 가나 슈퍼만큼 만국 공통인 비슷한 느낌에 편안함을 주는 곳이 또 없다. 하나 특이점은 가공육 종류가 진짜 많은 거 같다.
과일 중에 크랜베리도 찾았다. 크랜베리 주스라든가 잼, 케잌, 등등은 많이 먹었지만 실제 과일 크랜베리를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서 한통 사봤다. 뭔가 앵두와 대추 사이 같은 비주얼이다.
맛은 단맛이 하나도 없고 신맛만 강하고 물기도 거의 없는 것이 뭔가 식감은 약간 생대추스럽기도 했다. 크랜베리를 보통 생으로 안 먹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크랜베리는 이런 것이구나, 크랜베리 주스가 단 것은 다 설탕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 회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