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깨끗한 가성비 짱 중부유럽 나라
브로츠와프 중앙 기차역 근처 호텔에서 시내로 가는 길 교차로에 무명의 행인들 The Passage (Passage of the Anonymous Pedestrians)을 봤다. 아픈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가 뭔가 왠지 좀 먹먹한 느낌이랄까, 묵직한 느낌이 있다.
구시가지 Old Town, Rynek에는 알록달록 건물들이 붙어 있는 것이 약간 북유럽스럽기도 하다.
도시 곳곳에 청동 난쟁이 동상들 dwarves이 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더 운치가 있다.
성 막달레나 교회 St. Mary Magdalene Church의 두 탑을 연결하는 좁은 전망용 다리, 참회자의 다리 Bridge of Penitents가 유명하다 해서 가봤다. 교회는 아주 평범하다.
다리에 올라가는 계단이 좀 무서운 편이다. 등골이 오싹하달지, 오금이 저린다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은 신체 반응을 느꼈다.
다리는 생각보다 더 짧고 좁다. 아침에 문 열자마자 거의 바로 가서 관광객들이 없는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다리 위에는 다리의 슬픈 전설을 보여주는 청동 조각상이 있어서 더 특별하고 예쁜 뷰를 볼 수 있다.
올라갈 때도 와,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내려갈 때도 만만치 않아서 자연스레 쌍욕이 나왔다. 계단의 일부가 바닥이 뚫려 있는 철판 구조라서 아래를 보면 다리가 후덜덜 떨린다.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들은 못 갈 것 같다.
브로츠와프 도시 전체에 대략 600개 정도의 청동 난쟁이 조각상들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50개도 못 본 것 같다. 어느 조각상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어딜 가나 남녀노소 구분 없이 난쟁이 조각상이 있는 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진을 찍어대는 것을 보면 너무 귀엽다.
구시청 Wroclaw Old Town Hall 건물은 지금 시민 예술 박문관 Muzeum Sztuki Mieszczańskiej으로 쓰이는 중이다. 건물이 특이하게 생겼다.
생각지 못한 다양한 전시들이 있었다. 유리, 도자기, 금속 공예가 섞인 램프들만 이렇게 모아 놓은 것을 처음 봐서 신선했다.
약간의 현대 미술도 있었는데 2D와 3D, 금속 공예와 디지털 그래픽이 섞여 있는 것이 아주 요새 트렌드 느낌이다.
어쩐지 플란다스의 개가 생각나는 양철 주전자들 전시도 굳이 이렇게 주전자들만 한 군데 모아놓은 것은 처음 봤다.
구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결된 두 집들Kamieniczki "Jaś i Małgosia"이 있다. 연결된 두 집들 사이로는 성 엘리자베쓰 성당 Basilica of Saint Elisabeth이 보인다.
브로츠와프 대학교에는 박물관이 있다: Museum of the University of Wroclaw. 여기 매표소 줄이 제일 긴 것으로 보아 이 도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것이 아닐까 싶다.
박물관 전시는 사실 대단할 것은 전혀 없었다. 별 거 없는데 그냥 전시 공간들 자체를 잘해놨고 큐레이션을 잘했다? 정도다.
가장 볼만한 공간들은 레오폴디나 대강당 Aula Leopoldina과 성모 예배당 Oratorium Marianum이었다. 둘 다 천장과 벽 장식이 아주 화려하고 멋지다.
건물 타워 Mathematical Tower 꼭대기에도 올라갈 수 있는데, 올라가면 오데르강 Oder이 보인다.
성당섬 Cathedral Island에 가기 위해서는 모래 다리 Sand Bridge를 건너야 했다. 빨간 다리가 예쁘다.
섬 건너편에서 보이는 성당섬을 보면서 기대감이 커져갔다.
성당 다리 옆에는 사랑의 자물쇠들이 가득하다. 막상 성당섬에 가니 성당이 있었다, 는 거 말고 대단한 건 없었다. 성당섬 자체보다 가는 길이 더 흥미진진한 곳인 거 같다.
브로츠와프 대학교는 박물관만 있는 게 아니라 식물원 Botanical Garden도 가지고 있다. 아주 다양한 비지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대학교다.
마침 할로윈 맞이 호박 관련 행사 중이었고, 가장 큰 호박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렇게 큰 호박들 실제로 처음 봤다.
행사 때문인지 식물원에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행사의 일환으로 다양한 공예품들을 파는 팝업 가게들도 있어서 꽃구경 이상의 다양한 구경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식물원 안에 어디를 가든 호박들이 가득한 것이 왠지 모르게 신나는 기분이 들게 했다. 뭔가 행복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영국에서 12년, 유럽에서 15년을 살면서 폴란드에 처음 가본 거였다. 어쩐지 폴란드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왠지 폴란드는 가난하고 위험한 곳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을 했었다. 전혀 가난한 느낌이 없었고, 오히려 영국의 대부분의 중소도시들보다 더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위험한 느낌은 1도 없다. 어떤 느낌이냐면... 약간의 북유럽, 약간의 독일, 약간의 체코를 섞어놓고 물가만 한국 물가로 바꿔놓은 것 같다.
신기한 건 꽤 큰 도시라고 하는데 이민자가 거의 없는 느낌이다. 특히 흑인이나 이슬람 쪽 사람들, 인도/파키스탄 계열 피부가 갈색인 사람들은 관광객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가끔 보이는 비백인 외국인들은 한국인이거나 중국인인 거 같았다.
전반적으로 치안이 나쁘지 않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가성비가 짱이라서 마음에 든다. 포르투갈에 밥 먹으러 또 가고 싶은 것처럼, 폴란드도 여기저기 더 가보고 싶다. 내년에는 폴란드의 다른 도시들을 더 가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