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죽이는 아기자기 귀여운 도시
지난 토요일 알리칸테 Alicante에 간다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주말여행에 진심인 사람이다. 4시 반에 집을 나서서 공항 가는 버스 타고 6시에 공항 도착해서 아침 7시 비행기를 탔다. 2시간 반 날아가서 알리칸테 공항에 도착하니 11시 반이었다. 시내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해안가를 따라 가는데 날씨가 죽인다. 겨울이 되면서 한창 매일 우중충한 영국에 있다가 알리칸테 가니까 여기가 천국이다.
시내에 도착해서 숙소 에어비앤비까지 걸어가는데 동네 분위기가 아주 아기자기 귀엽다. 이 동네 사람들은 화분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숙소는 살짝 언덕 위, 좁은 골목에 있는데 이 지역이 특히나 관광객들이 붐비는 예쁜 곳인 것 같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네덜란드에서 미리 와 있던 친구가 만들어놓은 점심을 먹고서 관관을 하러 나섰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알리칸테 성 Castell de Santa Bàrbera이 보였다.
저 성은 어떻게 올라가는 거지, 하고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집들은 전반적으로 벽들이 다 하얀 와중에 빨간 화분들도 있고, 파란색 포인트를 준 집도 있고, 뭔가 집집마다 한 가지 색만 쓰라고 누가 시킨 것처럼 색깔을 맞춰 썼다.
어느 집은 파란 화분들로 장식을 진짜 예쁘게 해 놨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집 앞에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아주 가득했다. 누가 우리 집 예쁘다고 막 몰려와서 집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싫을 것 같기도 하다. 여긴 관광지니까 이렇게 해놓으면 시청에서 뭐 관리비 지원 같은 걸 하려나 싶다.
성을 바라보며 점점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해변가 쪽을 바라보니 언덕 아래 집들, 건물들은 상대적으로 더 알록달록 들쭉날쭉 다양성이 있고 더 그냥 사람 사는 보통 동네 같다.
언덕 중턱 즈음에는 양복을 차려입은 멋진 사람들이 있는 식당? 술집? 같은 것이 있었다. 너무 다들 양복을 입고 있어서 왠지 모를 위화감에 들어가 보진 못했다.
대체 저 꼭대기 성은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는 것일까 이리저리 고민해 봤는데 길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고 여기저기 길이 막혀있기도 해서 잠시 문을 닫은 건가 뭔가 알 수 없었다. 아, 뭐, 굳이 꼭 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성 안을 봐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고 대충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성곽 바로 밑에서 사진을 찍으니 아주 멋지다. 좀 더 내려가니 잠시 쉬어가라는 것 같은 작은 공터도 있다. 시내 가까이 아주 낮은 지대까지 내려가면 집들과 주차장이 있는데 네모네모 알록달록해서 귀엽다.
성 밑 주차장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길에 현대미술관 MACA Contemporary Art Museum of Alicante이 있어서 보러 들어갔다. 입구에서 느껴지는 어떤 B급 감성이 마음에 들었다.
입구에서 느껴진 B급 감성은 미술관 안에 작품들에서도 아주 살짝 느껴졌고,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랄지, 굉장히 추상적인 작품들이랄지 종류는 다양했다. 공짜 미술관이 이 정도 퀄리티면 진짜 훌륭한 느낌이다.
현대미술관에서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성당 Basilica of St Mary of Alicante이 있는데 그냥 작고 귀엽고 평범한 성당인데 돈 내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친구가 자기는 이런데 돈 내고 안 들어간다 그래서 안에 구경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당 앞 식당에서 성당 건물 구경을 하면서 상그리아를 한 잔 했다.
시내의 중심부 시청 앞에는 크리스마스 기념 설치물들이 있는데 막 태어난 예수님, 성모 마리아, 요셉, 그리고 세 명의 동방박사들인 거 같았다. 나는 처음에 흑인이 있어서 이거 성 니콜라스 St. Nicholas (네덜란드에서는 신타클라스 Sinterklaas)와 흑인 피트 Zwarte Piet를 같이 섞어 놓은 건가 싶었더니 보통 동방박사들 중에 한 명이 흑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기념 인물 설치물 처음 봐서 좋았다.
밥 먹고 어쩌고 어슬렁거리다 보니 금세 해가 졌다. 해변가 야자수 산책길은 저녁에 걸어도 아주 운치 있고 낭만이 넘쳤다. 시내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 조명들이 많아서 미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일찍 문을 닫아버려서 안에 구경을 못한 시장 건물은 무슨 시장 건물이 이렇게 으리으리한가 싶었고, 야자수와 조명 때문에 더 멋져 보였다. 부둣가도 좀 걸어봤는데 거긴 대단한 건 없었다.
(다음 회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