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성당만으로도 한 번쯤 가볼 가치가 있는 도시
학교에서 맞은편 오피스에 있는 교수님이 코벤트리 비엔날레 Coventry Biennial 2025에서 전시를 한다길래 전시를 보러 코벤트리에 갈까 하고 있었다. 마침 코벤트리 사시는 한국인 교수님도 최근에 알게 되어서 전시도 보고, 도시 구경도 하고, 지인 교수님도 만날 겸 겸사겸사 코벤트리 방문을 지난 토요일에 했다.
기차역에서부터 시내로 가는 길은 옛날 건물들이 간간이 보이는 와중에 전반적으로는 모던한 느낌이었다. 살짝 노팅햄 Nottingham같기도 하고 버밍햄 Birmingham같기도 하고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시내 작은 광장에는 귀여운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었다. 이런저런 크리스마스 테마 팝업샵들과 대관람차가 있어서 연말 기분이 나고 좋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는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쇼핑가가 있는데 규모가 상당했다. 우리 동네 레스터 Leicester랑 사이즈가 비슷한 도시인 걸로 알고 있는데 쇼핑가는 더 큰 것 같았다.
쇼핑가를 지나가다 전단지를 받았는데, 이건 뭐지? 뭘 한다는 거지? 한참 쳐다보다가 교회 전단지인걸 깨달았다. 이 동네 교회 전단지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핫한 헬스클럽!!' 같은 강렬함이 있는 것이 좀 웃겼다. 지인 교수님도 무슨 서커스라도 하는 줄 알았다고 까르르 했다.
코벤트리에서 제일 볼만한 곳은 성당이라길래 성당 쪽으로 가는데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은 구조물이 보였다. 코벤트리 크로스 Coventry Cross라고 한다. 구조물에 유리창이 있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안에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조각상이 있었다. 누구 왕 뭐시기 라고한다.
구조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교회 Holy Trinity Coventry (코벤트리 거룩한 삼위일체 교회)가 있고 그 뒤에 성당이 보인다.
코벤트리 성당 Coventry Cathedral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았는데 복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서 옆에 신축 성당을 세웠다 한다. 멀리서 본 성당은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조금 가까이 가니 폭격을 맞은 구성당과 새로 지은 성당을 잇는 입구의 스케일감이 멋졌다.
폭격 맞은 옛 성당부터 봤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멋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이런 황폐한 폐허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폭격 맞은 성당터 안에는 머리가 큰 조각상이 있었다. 아, 뭐야, 대두 조각상 귀여워, 하고 사진 찍었는데 찾아보니 이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예수님 모습을 만든 유명한 조각상이라 한다. 앗.
폭격 맞은 성당은 어떤 뷰로 봐도 너무 멋있었다. 와 진짜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질릴 때까지 매주말 가서 쳐다보고 있었을 거 같다.
옛날 성당 옆에 새로 지은 신축 성당도 들어가 보고 멋져서 깜짝 놀랐다. 신축인데 이렇게 층고가 높게 지었다니! 벽 한쪽에 알록달록 스테인드 글라스도 너무 독특하고 아름다웠고, 천사들과 성인들로 장식된 거대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입구도 넘 멋졌다. 이런 성당은 처음 봤고, 여러모로 멋진 요소가 다양하여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한 번쯤 방문해 보시라 추천드리고 싶다.
성당 연주자들이 크리스마스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앞자리에 가까이 가니 아마도 성가대가 앉는 자리로 보이는 곳에 단상 장식이 아주 멋졌다. 나무로 만든 날아가는 비둘기 떼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앞 방 교수님 전시가 있다는 허버트 미술관 Herbert Art Gallery & Museum에 갔다. 미술관 건물을 보면서 여기가 출입구인가 하고 가까이 갔는데 건물 정면처럼 보였던 곳에는 입구가 없었다. 건물의 측면 쪽으로 돌아가야 입구가 있는 희한한 구조다.
미술관 안에는 온갖 것들이 다 있었다만 추억의 뜀틀이 좀 인상적이었다. 이런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잖아.
미술관 위층 창문에는 누가 마커로 그림을 그려놨다. 작품과 낙서 사이 어디엔가 있는 그림풍이다.
이 동네는 중공업이 발달했던 도시라 엔진 전시도 있다. 이런 미술관에 엔진 있는 거 처음 봤다. 신기하다.
미술관 한쪽으로는 1-2층 구분 없이 층고가 아주 높게 되어 있고 아치형 천정 창이 있는 곳이 있는데 살짝 쉐필드 윈터 가든 Sheffield Winter Garden 느낌이 난다.
미술관의 마지막 부분, 출구 가까이에는 레이디 고디바 Lady Godiva 전시장이 있었다. 11세기 중반 코벤트리에 고디바라는 귀족 여성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높은 세금 때문에 고통받자 남편에게 세금 감면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 남편이라는 작자가 나체로 말을 타고 코벤트리 거리를 지나가면 세금을 낮추겠다 하여 실제로 진짜 그랬다는 전설이 있단다. 고디바는 실제 인물이지만 벌거벗고 말 탄 사건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한다. 전설이라 그런지 그림들을 보면 아주 다양한 버전의 고디바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알 수가 없다.
이 고디바가 초콜릿 고디바와 같은 것인가 찾아봤더니 같은 고디바가 맞았다. 벨기에 초콜릿 회사 사장이 희생, 용기, 고귀함을 상징하는 코벤트리 레이디 고디바 전설에 영감을 받아 이름을 그리 지었다 한다. 그래서 초콜릿 고디바 로고에 말 탄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유레카 모먼트!
미술관을 다 구경하고 밖에 나오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고 여기저기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아주 낭만적인 식당들도 보이고, 아까 낮에 본 발랄했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더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넘쳤다.
크리스마스 마켓 근처에서 (아주 늠름해 보이는) 레이디 고디바 조각상도 발견했다. 코벤트리는 오늘부터 나에게 아름다운 성당과 레이디 고디바의 도시다.
곳곳에 나무들도 반짝반짝 조명들을 입고 있어서 더 크리스마스 느낌이 났다.
몇 년 전에 코벤트리 근처 와릭대학 University of Warwick에서 박사 했던 칠레 친구가 코벤트리는 dodgy (어딘가 위험한, 질이 안 좋은) 해서 자기는 레밍턴 스파 Leamington Spa (코벤트리 근처 소도시) 산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코벤트리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고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는 둥, 뭔가 잔뜩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코벤트리 간다고 했더니 옆동네 영국인 친구도 '아, 거기는 좀 위험한 동네 아니냐'라는 식의 반응을 했다. 그래서 '너 가봤어?'라고 물어봤더니 가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였다.
이번에 코벤트리에 가보니까 코벤트리에 왠지 모를 한이라도 품은 누군가가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지인 교수님이랑 계속 같이 다니기는 했지만 전혀 위험하다는 느낌 못 받았고, 동네 깨끗하고 현대적이고 좋아 보이고, 성당 아주 아름답고, 왜, 어디가 위험한지, 안 좋다는 건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들 만날 때마다 코벤트리가 얼마나 좋은 도시인가, 성당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번쯤 주말여행을 꼭 해보시라, 추천하고 다닐 테다. 코벤트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