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각본 자체가 너무 웃긴 인어공주
지난주 일요일(3월 8일)에 Unfortunate (불운한)이라고 우르슬라 Ursula (인어공주에 나오는 바다 마녀)가 주인공인 뮤지컬을 보러 런던에 다녀왔다. 기차 타고 런던에 가면 1시간 걸리지만 아껴서 잘 살려고 고속버스 타고 3시간 걸려 런던에 갔다.
3시간 버스 안에 있는 동안 브리저튼 Bridgerton 시즌4를 보면서 가고 있었더니 옆자리에 앉은 영국 할머니가 말을 걸면서 런던에 리버티 백화점 Liberty London에 가면 브리저튼 드레스를 볼 수 있으니까 시간 있으면 가서 함 보라는 얘기를 해줬다.
전혀 계획에 없었지만 할머니 말을 듣고 귀가 팔랑거려서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리버티 백화점에 갔다. 이 백화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런던에서 가장 독특한 건물 중 하나로 튜더 리바이벌 Tudor Revival 스타일의 목조 건축으로 유명하다 한다. 확실히 이렇게 생긴 백화점 영국에서 처음 봤다.
백화점 입구에 꽃집이 있는 게 신의 한 수가 아닌가 싶다. 꽃들이 없었다면 자칫 좀 너무 딱딱하고 삭막할 수 있는 건물인 것 같은데 화사하게 꽃들이 있으니 들어갈 때부터 기분이 좋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까 들어가자마자 작은 공터에 커다란 풍선들이 달린 스카프 팝업샵이 있다. 아주 느낌 있고 좋다. 애완견이랑 같이 쇼핑하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브리저튼 팝업샵은 꼭대기층에 있어서 올라갔더니 위에서 본 풍선들은 더 알록달록 예뻤다.
리버티 백화점과 브리저튼의 콜라보 팝업샵에 드디어 들어갔다.
초록초록 화분들과 나무 벽지가 잘 어울린다.
브리저튼 스타일 드레스들이 진짜 있었다. 오아오아.
시즌 4 첫 에피소드 가면 파티 Masquerade party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들도 전시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엄청 화려한 패턴의 옷, 악세서리, 인테리어 소품들을 팔고 있었다.
파는 제품들 이외 장식들도 여기저기 다 브리저튼 스타일로 잘해놨다.
구조상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래층들이 되게 잘 보인다.
뭘 팔든 꽃장식은 일단 화려하다.
뭐 하나 사볼까 하고 가격을 슬쩍 봤는데 이를테면 제일 싼 여름용 잠옷 세트가 195파운드(39만 원)이어서 그냥 구경만 했다. 이럴 때 가끔 가난한 교수인 것이 좀 안타깝다.
브리저튼 원작 소설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서 몰랐는데 계단을 내려다보니 목조 계단과 고풍적인 전등들이 되게 운치 있다.
브리저튼 팝업샵 이외에 다른 매장들을 보니 백화점 느낌보다는 힙스터 샵 느낌이 좀 났다.
아쉬운 대로 꽃무늬 노트북이라도 살까 싶어서 가격을 보니 32파운드(6만 4천 원)이었다. 아무리 백화점이라도 그냥 노트북인데 6만 원이 넘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구경만 하고 나왔다.
백화점 구경을 잘하고 이동해서 점심 먹으러 극장 근처 중국집 Shan Shui Social에 갔다 (https://maps.app.goo.gl/r6eSGRiYXxpsJiBKA). 실패가 없는 마파두부를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입맛에 단맛과 마라맛이 너무 강했다.
맛있진 않았지만 아무튼 배를 채우고 드디어 극장 The Other Palace (다른 궁전)에 갔다. 버킹햄 궁전 바로 옆에 있어서 극장 이름이 이렇지 않나 싶다.
극장 안에 들어가니까 경사가 엄청났다. 앞에 앉은 사람 때문에 가려서 안 보일 일은 없겠네 싶다.
나는 앞에서 세 번째 줄 살짝 오른쪽으로 앉았는데 무대가 아주 잘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공연은 진짜 웃기고 재밌었다. 혹시 보실 분들이 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내용 설명은 구체적으로 하지 않겠다만 패러디 각본을 진짜 웃기게 잘 썼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잘 살린 것도 있지만 그냥 각본 자체가 안 웃길 수가 없는 각본이다. 최근 본 공연들 중에 제일 웃기고 제일 뭔가 속이 시원했다.
인어공주 에리얼 역을 맡은 배우는 줄리 얌마니 Julie Yammanee라고 얼굴이 익숙해서 생각해 보니 젊은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여자 조수 역을 했던 배우다 (https://brunch.co.kr/@8df7531fef574a5/124). 여자 조수역을 했을 때도 나름 웃겼는데 이번에 인어공주가 훨씬 더 웃겼다.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인 거 같다. 앞으로는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로 잘 기억해 둬야 겠다. 다음에는 꼭 주연도 하시길.
공연 보고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좀 남아서 문구점 같은데 들어갔다. 예쁘고 귀여운 카드들 구경을 좀 했다. 꽃도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해서 꽃과 같이 있는 고양이 카드들이 마음에 들었다. 올해 안에 언젠가 이런 느낌으로 그림을 한 점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