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티비 이해도가 높고 LGBTQ+ 거부감이 없으면 진짜 웃긴 패러디
지난주 수요일에 삐끗한 허리는 여전히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에 타이타닉 Titanique (스펠링이 다름) 뮤지컬을 보러 런던에 다녀왔다.
점심에 런던에 도착해서 쉨쉨버거에 갔다. 2월 초에 토토로를 보러 런던에 갔을 때 쉨쉨버거를 처음 먹고서 맛있어서 (https://brunch.co.kr/@8df7531fef574a5/238) 좀 생각났었다. 이번에는 치킨 버거과 바닐라 셰이크를 시켰다. 이것도 맛있긴 했는데 저번에 먹었던 기본 버거랑 커피 셰이크가 더 맛있었던 거 같다.
극장 Criterion Theatre은 지하철을 타면 한 정거장, 아니면 갈아타고 두 정거장이고 걸으면 30분 정도라서 날씨도 좋으니 그냥 걷기로 했다.
아주 특별한 건물도 아닌 거 같은데 건물의 특정 벽면들만 식물로 덮어놓은 이런 곳들이 무심하게 여기저기 툭툭 있는 것이 런던 시내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버킹햄 궁전 Buckingham Palace의 벽면을 끼고 걸은 것은 아마도 수년 전인데도 바로 얼마 전인 것처럼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벽만 봐서는 이게 궁전인 게 맞나 싶게 전혀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여기의 매력 중 하나라 생각한다.
드디어 궁전의 정면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궁전을 보니 뭔가 반갑고 신났다.
극장으로 가는 빠른 길은 그린 파크 Green Park (초록 공원)를 질러가는 거였다.
공원 안에 나무들은 가지가 앙상한 멋짐이 있었다.
공원을 빠져나오자마자 젤라또 체인점들 중에 내 최애인 벤치 Venchi가 보여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피스타치오 맛이랑 피스타치오 변형 (약간의 카다이프와 초코칩 같은 게 들어 있음) 두 가지 맛을 먹었는데 그냥 피스타치오가 더 맛있다는 걸 깨달았다.
왕립 미술 아카데미 Royal Academy of Arts도 지나갔다.
입구가 너무 멋져서 살짝 기웃거려 봤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인 것 같다.
입구를 지나 마당에 들어가면 진짜 다른 세상인 것처럼 길거리 소음이 사라졌다. 시간 여유가 더 있었다면 무료 전시를 좀 봤을 텐데 시간이 부족했다.
드디어 크라이테리언 극장 Criterion Theatre에 도착했다.
극장은 피카딜리 서커스 Piccadilly Circus 랜드마크 동상 정면에 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하는 사람들 줄이 엄청 길었는데 생각보다 금세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아, 내부 사진은 나갈 때 찍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나갈 때는 출구가 달라서 내부 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었다. 역시 사진은 찍고 싶은 게 있을 때 바로바로 찍어야 한다.
타이타닉 영화의 패러디 코미디라고 알고 가긴 했는데 주인공이 잭 Jack과 로즈 Rose가 아니라 셀린 디온 Celine Dion인 줄은 몰랐다.
타이타닉 영화에서는 그렇게 비중이 높은 줄 몰랐지만 공연에서는 로즈의 엄마의 활약이 대단했다. 로즈 엄마 역할을 한 아저씨가 제일 웃겼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핑크 블라우스). 셀린 디온 역할부터 시작해서 배우들이 다들 노래를 진짜 잘하고 춤도 잘 추고 특히 코미디 연기가 아주 훌륭했다. 스토리나 대사나 상황으로 웃기는 것도 있지만 몇몇 배우들은 사소한 표정, 동작, 뉘앙스, 등등까지 원래 코미디언들인 것처럼 웃겼다.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에 앙코르처럼 노래를 부를 때는 관객들에게 '자, 이제 다들 일어나 마음껏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으세요'라고 해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으니 아주 신나고 좋았다. 다른 쇼들도 이런 걸 좀 본받아 주었으면 좋겠다.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1열에서 봤는데 배우들이 바로 눈앞에 있어서 좋으면서 살짝 부담스러웠다. 배우들이 무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단이 바로 발 앞에 있어서 배우들이 이동할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이 크라이테리온 극장은 앞으로 2열에 앉아야겠다 생각했다.
전반적으로 타이타닉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영국의 티비 드라마나 쇼의 패러디들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영국인이거나 영국의 장기 거주자가 아니면, 혹은 영국에서 티비를 잘 안 보면, 어떤 포인트가 웃기는지 잘 모르겠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아마 좀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남자 배우들 대부분이 굉장히 게이 gay스러운 연출을 하는데 과장된 리얼함인데도 진짜 다들 게이인 건가 그냥 컨셉인건가 헷갈렸다. 남자란 모름지기 이래야지, 하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다면, 혹은 LGBTQ+ 그룹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 공연도 조금 결이 안 맞는다 느껴질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는 너무 재밌게 잘 봤다.
공연 후에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조금 있어서 포트넘 앤 메이슨 Fortnum & Mason 본점에 들렀다. 항상 London St Pancras 역이나 다른 지점들에서 쇼핑을 주로 했었고 본점은 처음 가봤다. 엄청 대단한 것이 있으려나 했는데 별로 그렇진 않았다. 매장이 건물 하나 전체라 더 커서 이것저것 많이 있다, 정도인데 결국 내가 산 과자들은 다른 지점들에도 있는 항상 먹는 것들이었다 (피스타치오랑 마카다미아넛).
영국 왕실 느낌의 에프터눈티 식기들과 다양한 영국의 차들, 과자, 초콜릿, 등등을 세트로 다 사갈 테다, 싶은 사람들만 가면 될 것 같다. 나는 어떤 곳인지 알았으니까 이제 또 굳이 갈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