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의 총탄에 쓰러진 영웅, 고향에 남은 흔적들
홍성을 찾은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고즈넉한 풍경 속, 조용한 마을 끝자락에 자리한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우리가 교과서에서, 영화 속에서 늘 듣고 자라온 이름.
그 이름을 따라,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저 마주한 건 김좌진 장군의 사당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면에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눈빛은 날카롭지만 담담했고, 그 안에서 싸움보다는 지켜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의 결기가 느껴졌습니다.
사당을 옆길로 내려오면 작지만 단정한 기념공원이 나옵니다.
그 중심엔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생애를 간결하게 정리한 전시관이 마련돼 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삶을 이해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장군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1917년 만주로 망명한 뒤 무려 13년간 항일 전선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단연 1920년 청산리 전투입니다.
당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 전투는, 한국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영웅담으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도 아팠습니다.
1929년에는 한족총연합회 주석에 취임하며 민생과 교육에도 힘썼고, 중국 항일세력과 연합해 새로운 싸움을 준비했지만, 1930년, 공산당원의 흉탄에 의해 순국하게 됩니다.
독립은 보지 못한 채, 타국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운명을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전시관 아래쪽에는 복원된 생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로 구성된 전통 한옥. 1992년에 복원되었지만, 곳곳에 묻어 있는 세월의 결이 그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와지붕 아래 낮게 깔린 대청, 우물가, 마루 끝 툇마루.
이곳에서 그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이후 독립운동에 온몸을 던지게 됩니다.
그의 삶을 알고 나면, 이 집의 평범한 구조조차도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가장 높은 뜻을 품었던 사람의 흔적이 담겨 있으니까요.
김좌진 장군은 조직을 만들고, 싸우고, 지키고, 스러졌습니다.
청산리에서의 승리는 화려했지만, 그 뒤에 남은 삶은 외롭고 고된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용한 마을 한쪽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말없이 역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영웅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그의 삶이 지나간 자리를 걸어보는 일.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예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