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광장, 성스러움과 공포가 공존하는 곳
⚠️ 이 여행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다녀오고 작성된 글입니다.
여행 당시의 분위기, 입국 조건, 현지의 정치 상황은 현재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는 낯선 듯 익숙한 도시입니다. 냉전의 이면, 문학과 전쟁, 겨울의 그림자와 눈부신 황금빛 첨탑들이 뒤섞인 풍경.
그 풍경의 중심에, 붉은광장이 있습니다.
눈 쌓인 거리 끝. 저는 ‘부활의 문’을 통과해 붉은광장에 들어갔습니다. 역설처럼 들리는 이름. 혁명의 광장, 피로 얼룩진 역사 속의 공간에 부활이라니.
부활의 문 들어가기 전 우측에 보이는 주코프 장군의 동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련군의 전설. 스탈린의 명령 뒤에서 실질적으로 전쟁을 지휘했던 이 남자.
그는 패배보다 고립을 두려워했고, 실리보다 신념을 중시했던 듯 보입니다. 말 위에 있는 주코프의 동상은 지금도 광장을 내려다보며, 전쟁의 잔해 위로 쌓인 나라를 지켜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늘 그렇게, 이질적인 것들을 당연하게 공존시키며 살아갑니다.
입구로 들어가자 나온 광장 왼편에는 카잔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핀란드 전쟁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성당.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예배당. 종교조차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러시아는 그런 나라입니다.
눈 내리는 아침, 아이스링크가 된 붉은광장의 풍경 속에 성당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광장 한켠에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묘가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서기 전, 가벼운 수색을 받고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시신은 방부 처리된 채 영구 보존되어 있고, 내부는 촬영 금지. 빛도 거의 없고, 공기도 정지된 듯한 공간입니다.
죽음의 공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은 간단했습니다.
“시신을 화장해 레닌그라드의 어머니 묘 옆에 묻어달라.”
하지만 스탈린은 그를 신격화했고, 유언은 무시당했습니다.
지금도 레닌의 묘를 두고 보존이냐 철거냐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역사가 늘 정답을 갖고 있지 않듯,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붉은광장의 끝,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성 바실리 성당입니다. 화려한 양파 돔. 게임 ‘테트리스’로 처음 이 성당을 본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이곳은 단지 예쁜 성당이 아닙니다. 피의 이반이 카잔 칸국을 무너뜨린 기념으로 세운, 영광의 상징이자 광기의 유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는 이 아름다운 건축을 완공한 뒤, 다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성당을 짓지 못하게 하려고 건축가의 눈을 뽑았다고 합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곳은 예술이 권력과 어떻게 얽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성당 내부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수도사들이 사용했던 유물들, 채찍과 족쇄, 금으로 장식된 성화와 찬송서.
탑 안쪽에는 촘촘히 그려진 예수의 초상들과 이콘화가 가득했습니다. 탑 안에서 올려다본 돔의 곡선,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운. 사람들이 성스러움에 고개를 숙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붉은광장은 아침에도, 저녁에도도 매혹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혁명의 심장, 제국의 중심, 전쟁의 무대, 관광지의 풍경. 시간은 흘렀지만, 이 광장은 여전히 그 모든 것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위를 걷는다는 건, 단지 모스크바에 왔다는 의미를 넘어 이 나라의 지난 백 년을 천천히 밟고 지나간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