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도전하거나, 공모전. 대외활동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경험,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날’은 늘 예상보다 더 무겁고,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오랫동안 이런 지원서를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취업한 지도 꽤 되었고, 어디에 무슨 지원서를 쓴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이번 준비는 새롭고도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오만함도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시간을 들여 지원서를 준비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고치며 저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문장을 완성했습니다.
그런 기대는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고, 그래서 결과를 마주했을 때의 실망감도 더 크게 다가옵니다.
결과는 메일로 도착했습니다.
제목은 아주 정중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최종 결과 안내드립니다.”
아쉽게도 지원자님께 불합격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지원자님의 앞으로의 모든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동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 든 감정은 실망을 넘어서 짜증이었습니다.
‘진짜 제대로 읽긴 했을까?’
‘이 기준이면 붙은 사람은 얼마나 완벽했을까?’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떨어졌다고?’
그 순간에는 제가 했던 노력이 모두 무시당한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그냥 읽고 기분 나빠하고, 말 없이 넘기게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정중한 어조로 간단한 피드백 메일을 작성했습니다.
“이번 결과는 수용합니다. 다만, 선발 기준이나 과정에 대한 안내가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향후 더 많은 지원자들이 방향성을 가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피드백이 제공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압니다.
그 메일이 실제로 읽힐지 아닐지는 모르고, 회신이 올 거라는 기대도 없습니다.
사실은 그저 저 자신을 위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괜히 혼자 억울해하고 분해하면서 속으로 삭이기보다는,
“나는 내 입장을 정중하게 전달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읽어주길 바라서라기보다는, 그날의 감정을 제가 제 자신에게 해명하고 싶어서 쓰는 글입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절차가 투명했느니, 공정했느니’ 하는 말들은 사실 붙었을 때 기분 좋으라고 덧붙이는 명분에 가까운 건 아닐까.
붙었으면 “역시 공정하고 잘 뽑았네.” 떨어지면 “기준이 뭐야?”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 솔직히 말해서 그게 아주 인간적인 심리 아닐까요.
결국 중요한 건 결과보다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제 태도였습니다. 화가 나는 날일수록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더 선명하게 남더군요.
그날 저는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욕 대신, 조용히 메일을 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글을 씁니다. 언젠가 이 글을 누군가가 보며 이렇게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그때 왜 이 훌륭한 사람을 안 뽑았지?’
그 말이 현실이 되는 날, 그게 제가 선택한 방식의 복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