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스크바 우주항공박물관 : 미국보다 먼저 우주로 가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진짜’ 우주인… 가가린이 날 반겨줬다

by 타이준


모스크바 한복판, 소련이 꿈꾼 우주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모스크바 우주항공박물관.


지금은 비록 NASA에 비해 조용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우주강국입니다. 우주선 귀환 기술과 로켓엔진 설계 등, 미국도 갖지 못한 수많은 특허는 러시아의 자존심이자 기술력의 증표입니다.

6호선 ‘ВДНХ(베데엔하)’ 역에서 하차하면, 멀리서도 로켓이 솟구치는 조형물이 시선을 끕니다. 그 방향으로 걸어가면 곧, 거대한 우주의 역사와 마주하게 됩니다.

유리가가린과 함께 시작하는 시간여행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두 팔 벌린 유리 가가린 동상이 가장 먼저 맞이합니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자 소련의 상징이 된 인물. 그 미소는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꿈을 현실로 만든 인간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전시관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깊이 있습니다. 탐사선, 인공위성, 초기 우주복, 우주 개발 연표 등 냉전시대 우주경쟁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주의 문을 열기 전, 한 마리의 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우주견이 전시 된 전시관. 소련은 인간을 우주로 보내기 전, 먼저 동물을 보냈습니다. 최초의 우주견 라이카는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에 올라갔지만, 고온과 스트레스로 몇 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희생된 라이카의 죽음은 이후 계획의 교훈이 되었고, 그 경험은 벨카와 스트렐카라는 두 마리의 개를 무사 귀환시키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두 마리 동물은 박물관 한 켠에 전시되어 있었고, 그 앞에서는 사람들 모두 조용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생명을 우주로 보낸다는 일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치올코프스키, 우주에 대한 인간의 상상

박물관에는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Константин Циолковский) 박사의 연구실도 재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우주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우주선 추진 원리와 다단계 로켓 개념을 처음 이론화한 인물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우주탐사의 기술적 기반이 이 한 사람의 상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원고와 실험 기구들이 단순한 과학 유물을 넘어, 인간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우주정거장과 우주식량, 생활의 디테일

미르 우주정거장의 모형 내부 체험 공간도 흥미로웠습니다. 좁은 통로, 복잡한 기기들 속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튜브형 식량이었습니다.

우리가 치약처럼 생각하는 그것은 실제 초기 우주식량이었습니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공기 중에 흩어지는 걸 방지해야 했기 때문에, 저렇게 ‘짜 먹는’ 방식으로 조리법을 단순화한 것이죠.


부란, 잊혀진 비운의 우주왕복선

냉전의 산물 중 하나인 부란 우주왕복선도 전시돼 있습니다. 무인 비행에 성공했지만, 미국의 첼린저호 폭발 사고 이후 유인 계획은 취소됐습니다. 결국 소련의 해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기술력과 야망은 여전히 박물관 안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우주인들의 얼굴

전시 마지막에는 소련부터 현대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우주에 다녀온 우주비행사들의 사진이 가득 걸려 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중력을 벗어나 꿈을 이룬 이야기 그 자체였습니다.


마무리 – 꿈의 크기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공간


우주항공박물관은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닙니다. 이곳은 인간이 ‘불가능’을 향해 걸어온 시간, 그 도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곳입니다. 우주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장소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박물관 내 레스토랑에서 우주식량을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맛이 없을 것 같아 먹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평생 잊지 못할 체험이 될지도 모르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성 통일전망대 - 북한이 보이지만 긴장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