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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부도 : 시간의 길 위에 선 섬과 빨간 등대

등대 하나 보러 갔을 뿐인데, 마음이 잠겼다

by 타이준


– 시간의 길 위에 선 섬과 빨간 등대 이야기


겨울이었습니다. 한참 바다보다는 실내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계절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날에 강렬한 풍경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화성에 일이 있었던 날, 무작정 제부도를 찾아갔습니다. 해수욕장이 목적은 아니었고, 관광지도 잘 꾸며진 곳을 찾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겨울 바다에서 느껴질, 뭔가 묵직한 감정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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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입구에는 ‘워터워크’라는 전망 공간이 있습니다. 높은 전망대는 아니지만, 공연장의 객석처럼 계단식으로 놓인 구조 덕분에, 그곳에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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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살이 바다를 덮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바다는 여전히 반짝였습니다. 사람들은 잘 안보이고 드문드문 차들이 지나다니고, 그 고요함 속에 바다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본 제부도의 첫인상은 '시간이 만든 길'이었습니다.


밀물일 땐 단절되고, 썰물일 때만 길이 열리는 그 모습은


마치 이 섬이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누군가에게만 열리는 특별한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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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연스러운 제약이 오히려 이 섬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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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안쪽으로 들어서 한참을 걷다 보면, 붉은색 등대 하나가 바다 끝에 서 있습니다.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등대입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바닷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제부도로 들어오는 그 길목에 등대가 선 모습은 묘하게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등대가 실제로 뱃길을 인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제게는, 바다에 잠긴 길을 다시 열고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조용한 안내자처럼 보였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등대 옆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일.

별거 아닌 장면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조용하고 담백했지만, 그 속에 묘한 설렘과 울림이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겨울 바다와 붉은 등대는, 제 기억 속에서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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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여름의 제부도는 어떤 얼굴일지 궁금해졌습니다.


분명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테지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변, 따뜻한 햇살 아래의 모래사장이 떠오릅니다.



만약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면,

썰물에 열린 바닷길이 다시 밀물로 잠겨

섬이 완전히 고요 속에 갇히는 그 순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사방이 조용해진 밤바다와 등대 불빛 아래에서

마치 섬 전체가 나만의 시간이 된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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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상을 품고, 제부도를 천천히 떠나왔습니다.

언젠가 여름의 제부도에서 또 다른 인상을 품게 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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