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를 지킨 사람들을 기억하며 : 평택 서해수호관

우리의 바다를 지킨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

by 타이준

서해수호관을 찾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저는 원래 역사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역사는 늘 책 속, 먼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만들어지고 있고, 바로 이 땅·이 바다에도 우리 시대의 역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0251122_124756.jpg?type=w1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뉴스로만 듣던 이름들이지만, 그것은 분명히 내가 살던 시대에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희미해져도 그날 바다 위에서 싸웠던 이들의 현실만큼은 잊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 2주 전, 평택 제2함대사령부 견학을 예약했습니다.


서해회관에서 견학 시작 해군의 현장으로 들어가다

20251122_125219.jpg

견학 당일, 서해회관에 도착해 대기한 뒤 직원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예약을 확인받았습니다.


직원은 “바깥에 대기 중인 해군 버스로 이동하라”고 안내했고, 밖으로 나가니 군 버스가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 오르며 신분증을 제시했고, 잠시 뒤 오늘 일정을 책임질 인솔 장교가 탑승했습니다.


버스가 제2함대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곳이 단순한 ‘견학 장소’가 아니라


실제 전투가 벌어졌고 지금도 전선에 서 있는 부대라는 사실이 전신으로 느껴졌습니다.


인솔 장교는 버스 안에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곳은 최근까지 북한과 교전을 벌였던 부대입니다. 유사시 가장 먼저 적과 싸워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 단풍도 있고 부대안은 대학 캠퍼스 처럼 평화로워 보일 수 있지만, 촬영은 반드시 지정된 구역에서만 가능합니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긴장감과 책임감은 분명했습니다.


참수리정 앞에서

20251122_132502.jpg

서해수호관 앞의 첫 목적지는 참수리급 고속정이었습니다.


선체 한쪽에는 북한군 포탄이 관통해 나온 흔적이 붉은 동그라미로 표시돼 있었습니다.


장교는 짧게 설명했습니다.


“전투는 좌현에서 시작됐습니다. 여기 보이는 우현의 구멍은 좌측에서 맞은 포탄이 그대로 관통해 나온 자리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해수호관에서 보고 난 뒤, 다시 이곳에서 정리하겠습니다.”

20251122_132545.jpg
20251122_134711.jpg

짧은 설명이었지만 작은 원 하나가 남긴 무게는 묵직했습니다.


서해수호관 – 지도로만 보던 NLL의 진짜 의미


전시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북방한계선(NLL) 지도였습니다.

20251122_135110.jpg

NLL은 정전협정 이후 유엔군이 설정한 해상 경계선입니다. 북한은 단 한 번도 이를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선을 흔들기 위해 도발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도 앞에는 작은 모형들이 전투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고, 이 선을 지키기 위해 실제 사람들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해전을 지나온 바다 – 제1 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대청해전


제1연평해전(1999)

20251122_135211.jpg

제1연평해전에서 우리는 북한 경비정을 충돌해 밀어내며 대응했습니다. 화력에서도 우리가 우세했습니다. 북한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때 깨달았습니다. 기존 전력으로는 우리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해상용이 아닌 전차포를 억지로 장착한 기형적 경비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2연평해전(2002)


설명하던 장교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낮아졌습니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참수리 357정이 침몰했고, 6명이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사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습니다.


윤영하 소령 : 기습 속에서도 끝까지 대응 지시하고 전사

한상국 상사 : 침몰 까지 조타기를 잡고 있었고 침몰안 배에서 수습

조천형 상사 : 고사총 포대를 지키다 전사

황도현 중사 : 22포 사수로 마지막 까지 방아쇠를 잡고있다 적의 집중공격으로 전사

서후원 중사 : M60 기관총을 마지막까지 적을 향해 응사하며 전사

박동혁 병장 : 부상 상태에서도 구조 활동, 84일 투병 후 순직

20251122_140138.jpg
20251122_135541.jpg


박동혁 병장 사후 시신에서 포탄의 파편을 수습했는데 자그마치 3kg의 쇳조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3kg이 어느정도인지 보여주는 전시물도 있었습니다.

20251122_135717.jpg

그리고 총열덮개가 파손된 소총에서는 권기형 상병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적의 포탄 파편에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된 상태에서 그 손가락을 군복 주머니에 넣고 끝까지 사격을 이어갔습니다.


이름 하나하나가 전투의 실체를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조천형 상사의 당시 네 달 된 딸은 2025년 해군 소위가 되어 아버지의 뜻을 이어 지금도 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청해전(2009)

20251122_140103.jpg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은 교전수칙과 대비 태세를 전면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대청해전은 10여 분 만에 완전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후 장교는 의미심장하게 덧붙였습니다.


“북한은 이때 깨달았습니다. 정면 승부로는 대한민국 해군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전혀 다른 방식의 도발을 준비했습니다.”


누구나 그 다음에 벌어진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을 떠올렸습니다.


다시 참수리정 북한의 ‘우발 교전’은 거짓


전시관 관람을 마친 뒤, 다시 참수리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실제 전투가 벌어진 좌현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장교는 배의 윗부분을 가리켰습니다.

20251122_140659.jpg

“북한은 지휘관 위치를 가장 먼저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물과 닿는 흘수선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를 반복해서 공격했습니다. 즉, 침몰을 목표로 한 명확한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날짜를 말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전 국민이 월드컵 3·4위전을 기다리던 날입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20251122_140703.jpg

“북한의 ‘우발 교전’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건 철저히 준비된 계획적 도발이었습니다.”


천안함 – 절단면 앞에서 마주한 처절한 진실


버스를 타고 이동하자, 거대한 회색 선체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772 천안함. 멀리서 보았을 때는 마침 지금도 살아 움직일수 있는 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까히 가자 두동강난 선체가 지지대에 올려져 간신히 버티고 있는게 보입니다.


사진으로 보던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금속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찢겨 나가 있었고,


‘사고’라는 설명은 단 1%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장교는 절단면 아래에서 말했습니다.

20251122_143103.jpg

“충돌도, 피로 파괴도 이런 절단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어뢰 폭발, 그것도 북한제 어뢰만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주변 해역을 수색해 북한제 어뢰 추진체를 인양했습니다.”

20251122_141739.jpg
20251122_142150.jpg
20251122_141749.jpg

그는 이어 말했습니다.


“국제 조사단과 우리 해군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고,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도 이를 공식적으로 규탄했습니다.”


그러나 절단면보다 무거운 것은 전사자들의 숫자였습니다.


46명.


천안함 승조원 46명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다 위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다 사라진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20251122_142211.jpg

돌아오는 길 –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견학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오르며 사람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참수리정의 선명한 피탄 흔적, 제2연평해전의 사투, 두 동강 난 천안함의 비극.



이곳은 과거의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우리의 역사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서해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나며 마음속에 울림처럼 남은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북한의 도발은 분명한 현실이며, 우리는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

기억하는 것이 곧 지키는 일이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우리의 바다를 지키는 첫 걸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산성당 : 세개의 시간을 거쳐 지금은 드라마 명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