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성당 : 세개의 시간을 거쳐 지금은 드라마 명소로

문산성당 : 조선시대 관청에서 일제시대를 거쳐 지금은 드라마 명소로

by 타이준

진주 문산읍의 조용한 골목을 지나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가장 먼저 오래된 찰방청 터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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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산역참이 있던 자리.

공무로 오가던 관리들이 말을 갈아타고, 지역을 감찰하며 머물던 바로 그 공간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조선 후기 박해 시대에는 이곳이 천주교인을 색출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성당이 서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역사의 흐름이 이렇게 조용히 뒤바뀌어 저마다 다른 의미를 쌓아간다는 것이, 그저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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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방청 자리 위에서 시작된 첫 번째 성당 : 한옥 성당(1923)

찰방청 건물을 사들여 가장 먼저 세운 성당이 바로 앞에 있는 한옥 성당입니다.


경남 고성의 사찰 건물을 통째로 옮겨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실제로 목재에서는 조선 중기의 흔적도 확인된다고 합니다.


바깥에서 바라본 한옥 성당은 전통 건축의 기둥과 처마 위에 천주교 건축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얹혀 있는 독특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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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사찰 같기도 하고, 성당 같기도 해서 두 문화가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서로를 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5년 뒤, 새롭게 세워진 두 번째 성당 : 고딕 성당(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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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늘어나자 1937년, 한옥 성당 바로 옆에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고딕 양식 성당이 새로 세워졌습니다.

전형적인 유럽 고딕 성당보다는 단정하고 간결하지만 아치형 창, 종탑 실루엣, 서양식 내부 구조는 일제강점기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서양의 건축 양식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결국 한옥 성당과 고딕 성당이 나란히 서 있는 지금의 풍경은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근대 초, 현재 이 세 시대가 한자리에서 겹쳐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예수상 뒤 계단을 따라 고딕 성당 안으로


성당 마당 한쪽에는 조용히 서 있는 예수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작은 계단을 따라 고딕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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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밝고 깨끗했습니다.

장식이 과하지 않아 차분했고, 높은 천장과 단단한 벽면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앞서 본 한옥 성당의 나무 향기와는 전혀 다른, 근대 건축 특유의 깔끔한 리듬이 느껴졌습니다.


성당 뒤편 : 작은 성모 동굴과 마리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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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을 둘러본 뒤 뒷마당으로 나가면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작은 성모 동굴과 마리아 상이 나옵니다.

돌과 식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머물기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최근 문산성당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더 킹 : 영원의 군주

징크스의 연인


두 작품 모두 문산성당의 고요한 분위기와 한옥·고딕 건물이 동시에 있는 이색적 풍경을 활용했습니다.

특히 성당 앞 계단과 한옥 성당 주변이 등장해 지금도 방문객들이 촬영지를 찾아 찾아오곤 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천천히 걸어보면, 왜 영상미가 좋은 작품들에서 이 공간을 선택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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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돌아서며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세 시대가 같은 자리에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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