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신리성지 : 유럽풍 사진 스팟과 한국의 카타콤베

아름다운 사진 명소이자, 역사의 현장

by 타이준

충청남도 당진 합덕읍의 평야 한가운데, 회색빛 전망대 건물이 멀리서 보였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위에 홀로 선 그 건물의 모습은 마치 유럽의 오래된 수도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이곳에는 조선 후기의 기록과 신념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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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한국의 카타콤베’라 부릅니다.


고대 로마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지하 묘역에서 신앙을 지켰듯, 당진 신리에서도 조선의 선교사와 신자들이 억압 속에서 지식과 믿음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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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다가서자 가장 먼저 넓은 광장이 맞이했습니다. 광장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초가집이 있습니다.


이곳은 19세기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었던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머물던 주교관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조선의 순교사와 교회사 자료를 정리하며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원고들은 신앙서적이면서 동시에 조선 후기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이 초가집은 박해의 시대 속에서 지식과 신념을 지켜낸 조선의 작은 서고, 즉 진정한 ‘한국의 카타콤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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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뒤편에는 벽돌로 지어진 신리 성당이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한 인상을 주는 건물로, 성당 내부에는 순교자들의 이름과 기록이 전시되어 있고, 바깥쪽으로는 넓은 잔디광장과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초가와 성당이 나란히 놓인 풍경은 전통과 근대가 한자리에 머문 듯한 인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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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지나면 성 다블뤼 기념관이자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이 건물의 지하에는 국내 유일의 순교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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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는 여러 회화 작품과 조선 후기 인물들의 초상이 걸려 있으며, 벽면을 따라 이어진 그림들은 그 시대 조선 사회의 긴장과 변화를 기록한 시각적 사료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용한 조명 아래에서 삶과 죽음, 기록과 신념이 한 화면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윽고 밖으로 나와 전망대 위로 올랐습니다.


회색빛 콘크리트 위에 서면, 당진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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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지붕과 초가 주교관, 멀리 이어지는 논과 밭이 차분한 질서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햇살이 부드럽게 퍼지는 오후 시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신리의 풍경은 유럽의 작은 마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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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미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평야 위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시간대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찾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며 다시 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한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느껴졌습니다.


신리성지는 아름다운 사진 명소이자, 조선 후기의 기록과 지식, 그리고 인내의 역사가 남은 현장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평야 위에서 그들의 시간을 조용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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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이어진 삶의 흔적이 지금 우리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이 회색빛 언덕 위에서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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