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정치인, 평범한 여행자도 맞이한 특별한 공간
겨울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자연스럽게 따뜻한 곳을 찾게 됩니다.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 나서도 몸속까지 스며드는 찬 기운을 달래고 싶을 때,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온천입니다.
이번 겨울, 저는 대전 유성구 유성온천 단지에 있는 계룡스파텔로 향했습니다.
화려한 최신 리조트보다는, 오래된 시간과 온기가 함께 남아 있는 공간이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대전 일대는 과거 신라와 백제가 맞닿아 있던 국경지대였습니다.
이 지역 온천의 기원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흥미로운 전설 하나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크게 다친 아들을 둔 백제의 한 어머니가 따뜻한 샘물로 상처를 씻기며 치료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친 학이 눈 녹은 물에 날개를 담그고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 또한 이 물의 효능을 알게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는 이 땅의 온천이 오랜 세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돌봐왔다는 상징처럼 남아 있습니다.
유성온천의 본격적인 개발은 1925년,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중일전쟁 시기에는 일본군의 휴양지로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육군이 인수해 관리하면서 지금의 계룡스파텔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곳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시간도 겹쳐 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까지 총 다섯 명의 대통령이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군 휴양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곳은 한 시대의 권력과 휴식,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제가 묵은 곳은 2인 양실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시설은 최신 호텔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의 ‘부잣집’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낡았다는 인상보다는, 오히려 잘 관리된 시간의 흔적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방은 2인이 사용하기에 여유 있는 크기였고, 추가 인원이 있을 경우 엑스트라 베드도 무료로 제공됩니다.
요즘 숙소에서는 보기 드문 배려라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띄었던 점은 군 관련 투숙객이 비교적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현역 군인이나 군 관계자는 일반 투숙객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숙소 곳곳에서 군복 차림의 투숙객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이 공간이 지닌 역사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최신 시설과 세련된 디자인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 있지만, 레트로 감성과 안정감을 원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간입니다.
계룡스파텔 별관에 위치한 대온천탕은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기본 이용 요금은 8,000원이지만, 현역 군인, 중사 이상 예비역, 국가유공자는 할인 혜택이 있으며 투숙객 역시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여행의 피로뿐 아니라 겨울의 찬 기운까지 천천히 풀려 나갑니다.
화려한 스파 시설은 없지만, 온천 본연의 역할에는 충실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룡스파텔은 요즘 말하는 ‘인스타 감성’ 숙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느슨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군인도, 정치인도, 평범한 여행자도 맞아왔을 공간.
그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순간, 묘한 안정감이 전해집니다.
겨울에 찾는 온천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계절을 건너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번 겨울, 계룡스파텔은 그 역할을 조용히, 그러나 충분히 해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