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가도 앞서 다녀온 에스토니아의 탈린 못지않게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독일인 주교 알베르트에 의해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스웨덴에 점령당하는 등 도시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런 긴 세월을 보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는 그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번엔 그 격동의 흔적을 라트비아 구 시가지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처음으로 소개할 곳은 리가 돔 성당이다. 리가 돔 성당은 리가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러 상륙한 알베르트 대주교에 의해서 설립된 성당이다. 건립 이후로 전쟁과 화재 등으로 수차례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건설이 시작되어 중간중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바뀐 흔적들이 있다고 한다.
리가의 남아있는 스웨덴의 흔적들
이곳은 스웨덴 문이라고 한다. 17세기 말에 스웨덴인들이 리가를 점령한 기념으로 세워진 문이다. 문을 통해 들어가면 구 시가지가 시작되는 곳이고 커피숍이 많이 있다. 개선문 치고는 화려하거나 그런 건 딱히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고 구 시가지가 시작되는 입구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리가 구 시가지의 명물 '삼 형제 건물'
스웨덴 문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나란히 있는 세 건물이 있다. 특이한 모양의 건물 세 채가 바짝 붙어있는데 이 건물들을 삼 형제 건물이라고 한다. 형제라고 하는 거 보니 비슷한 시기에 같은 건축가가 지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건물은 15세기 16세기 17세기에 각각 1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지어진 건물이다. 각 세기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 삼 형제 건물을 보면 15세기부터 17세기 유럽 건축양식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있다. 참고로 오른쪽 흰 건물이 가장 형님 중간이 둘째 왼쪽 초록 건물이 막내라고 한다.
라트비아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 '리가성'
다음은 리가성이다. 13세기경 리보니아 시대에 건설된 이 성은 스웨덴 점령시대에 스웨덴인들이 별관을 증축했고 여러 시기를 거치며 개조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라트비아 대통령의 거처로 활용되고 있다.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리가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날씨가 추웠지만 강바람을 맞으면서 천천히 리가성을 둘러봤다.
오랜 격동의 세월을 지나서 맞이한 라트비아의 독립
오늘 마지막 소개할 곳은 리가 자유 기념비다. 자유의 여신상이라고도 부르는 이 동상은 1818년부터 1920년까지 독립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라트비아인에게 바치는 동상이다. 대략 40미터가 넘는 높이라고 한다. 과거 여러 민족에 의해서 점령당한 아픈 역사가 있기에 라트비아 국민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이 정말 컸다. 그래서 1935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했고 그 결과 이렇게 멋진 동상을 세울 수 있었다. 이 여신상은 당시 유명 조각가였던 칼리스 잘레라 라는 사람이 제작했다. 여신이 들고 있는 세 개의 별은 라트비아의 대표적인 세 지방인 쿠르제메, 비제메, 라트칼레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