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꺾지못한 리투아니아인들의 신을 향한 마음
나는 짧았던 라트비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도 다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해서 전날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네 시 반쯤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예약해둔 호텔에서 큰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버스정류장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리투아니아 샤울레이에 가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거리 풍경은 아직도 캄캄하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샤울레이행 6시 첫차를 타기 위해서 기다렸다. 도착하니 대략 출발 20분 전이다. 리가에서 샤울레이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려서 샤울레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 건물에는 쇼핑몰과 식당가가 있는 제법 큰 복합공간이었다. 샤울레이에 도착해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했다. 내가 오늘 가고자 하는 십자가 언덕은 여기서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갈 수 있다. 버스 터미널로 가서 그곳으로 가는 시간표를 알아보았다.
일단 매표소 가기 전에 오른쪽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1유로에 하루 동안 짐을 맡아준다. 나는 샤울레이에서 숙박하지 않고 당일 바로 떠날 것이라 짐을 맡길 곳이 필요했다. 나처럼 당일로 보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지 짐 보관소가 잘 되어있다. 짐을 맡기고 버스 매표소로 향했다.
버스 터미널 창구에 가서 리투아니아어로 십자가 언덕을 뜻하는 `크리주 칼나스` 라고 외치니 매표소 직원이 이 표를 주었다.
사실 리투아니아어인 `크리주 칼나스`, 영어로 `힐 오브 크로시스`, 러시아어로 `가라 크리스토프` 어떻게 말해도 직원이 알아듣는다. 먼저 이곳을 다녀온 어떤 여행객은 쪽지에 십자가를 그려서 보여줬더니 이 표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표는 버스 기사에게 직접 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시간표를 보니 대략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있다. 주의할 점은 이 버스는 도만타이라는 곳으로 가는 도중 중간에 한번 십자가 언덕을 들리는 버스이기 때문에 버스 기사에게 꼭 `크리주 칼나스` 에서 내려야 한다고 꼭 말을 해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니 오른쪽에 보이는 버스가 아니라 작은 승합차가 승객들을 기다린다. 기사에게 한 번 더 목적지를 확인하고 나서 탑승했다.
그리고 버스가 대략 20분을 달리더니 황량한 이곳에 내려주었다. 버스 기사는 저쪽이라고 손가락으로 알려주고 떠났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 그리고 구글 지도를 보면서 대략 20분 정도 걸었다.
십자가 언덕 입구에 주차장이 있고 그 옆에 이렇게 관광 안내소가 있다. 날씨가 추워서 여기 있는 자판기에서 핫초코 한잔하며 몸을 녹인 뒤 언덕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제 조금만 가면 나온다. 그리고 여기 안내소에서 기념품을 파니 기념품이 필요하면 여기서 사면 된다.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십자가를 몇 개 사고 길을 나섰다.
언덕이라고 했는데 약간 봉긋하게 솟아있는 숲으로 보였다. 얼핏 보면 공동묘지 같기도 했고….
가까이에서 언덕을 보니 말할 수 없는 강한 기운에 압도되었다. 입구부터 각양각색의 예수상과 십자가가 눈길을 끈다.
그 모습만 봐도 어째서 이곳이 리투아니아의 민족 성지로 불리는지 대략 느낄 수 있었다. 이 언덕은 1800년대 중반에 반러시아 봉기 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세운 데서 유래한다. 리투아니아인은 가톨릭의 교세가 강한 곳으로 대략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가톨릭 신자이다. 그래서 리투아니아 국민은 유럽에서 가장 가톨릭 정신이 잘 보존된 국가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리투아니아가 소련 정부에 강제 병합을 당하고 소련 정부에서는 종교활동을 일절 금지하고 박해했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의 신앙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과거 1800년대에 세워진 이곳을 소련 정부는 병합 이후 이 언덕을 없애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서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하지만 한밤중에 리투아니아인들이 십자가를 들고 와서 다시 언덕을 만들고 낮에 다시 언덕이 철거되면 밤에 다시 십자가를 세우는 것을 반복했다. 이때를 이른바 `십자가 전쟁`이라고 한다. 십자가 언덕은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강제로 짓밟은 소련 정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에 리투아니아 국민은 이곳을 자랑스러워한다.
십자가 언덕 가운데 길을 통해서 올라가면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다.
철로 된 봉 두 개를 용접해서 만든 십자가도 있고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 목걸이 모양의 십자가 아마 모든 형태의 십자가를 이곳에서 볼 수 있을듯싶다.
언덕 사잇길을 지나서 뒤 쪽에서 본 십자가 언덕의 모습이다.
언덕 옆에 마련된 이 예배당은 과거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리투아니아에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미사를 하는 모습이 전 세계의 신자들에게 알려졌고 자연스럽게 십자가 언덕과 리투아니아인들 사연이 전 세계로 퍼졌다. 그 이후 이곳은 리투아니아의 대표 관광지가 된 것이다.
십자가 언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십자가로 시작해서 십자가로 끝나는 곳이었다. 현대 기독교 그리고 리투아니아인들의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여행지였다.